지난 10일 오후 11시쯤 경남 창원시 의창구의 한 주택에서 40대 엄마와 초등학생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퇴근한 남편이 발견해 신고했다. 숨진 40대 여성은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우울증을 앓던 엄마가 딸을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지난 9일 경남 김해 한 아파트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아파트에서 40대 여성이 중상을 입고, 초등학생 아들은 쓰러진 채 숨져 있는 걸 여성의 전 남편이 발견해 신고했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여성도 다음 날 새벽 숨졌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 형식 메모 등을 토대로, 생활고를 겪던 여성이 우울감에 아들을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울증 때문에 본인뿐 아니라 자녀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비극적 사건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우울증이 가정도 파괴하는 일이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 우울증 환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치부해 우리나라의 우울증 치료율은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사회적인 우울증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3월에는 경기도 시흥시에서 50대 여성이 우울증과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20대 지적장애 딸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홀로 딸을 양육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고, 갑상샘 암에 우울증까지 찾아오면서 이런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에는 인기 인터넷 방송 진행자 BJ잼미(20대)가 악플과 소문 탓에 생긴 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우울증 환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1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7년 69만1164명이던 우울증 환자는 지난해 93만3481명으로 35.1%가량 늘었다. 하지만 우울증 치료율은 낮다. 올해 초 창립한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에 따르면 한국의 우울증 치료율은 11%로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미국의 우울증 치료율은 66%다. 우울증 치료율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우울 척도를 분석해 ‘중증도’ ‘심함’ ‘매우 심함’에 해당하는 우울증 환자 중 실제 치료를 받는 비율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우울증 치료율이 낮은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여전하고, 우울증을 개인이 극복해야 할 문제로 치부하는 분위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장인 홍승봉 성균관대 의대 신경과 교수는 “우울증은 초기에 치료하면 1년 안에 80~90%가 치유될 수 있고 재발률도 낮다”며 “하지만 시기를 놓치면 개인 문제로 끝나지 않고 감정적으로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은 자살의 가장 큰 요인이다.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발간한 ‘전국 자살 사망 분석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전체 자살 사망자는 6만4124명인데, 이 중 56.2%(3만6040명)가 우울 장애(우울증)를 비롯한 정신질환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을 적극적으로 치료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승봉 교수는 “우울증을 치료하려면 항우울제를 써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부작용 등을 이유로 지난 2002년부터 비정신과 의사가 처방을 못 하도록 했다”며 “전체 96%나 되는 비정신과 의사도 항우울제약을 처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우울증 환자를 일찍 발견하고 상담과 치료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학교나 직장, 동사무소 등 우리가 평소에 자주 가는 곳에서 쉽게 정신 건강과 관련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우울증 환자나 자살 위험군을 조기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다”며 “우울증에 대한 안전망 구축은 병원만이 아니라 지역사회 전반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도 “병원 진료 전 정신 건강과 관련된 간단한 문진표 작성을 제도화해 숨은 우울증 환자를 찾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