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1일 서울역에서 주요 기차역 매표와 광역철도 역무, 철도고객센터 상담 업무 등을 맡는 코레일네트웍스 노조가 임금인상,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이고 있다. / 장련성 기자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가 ‘낙하산 사장’이 노조에 써준 ‘파업 시 임금 70% 지급’ 합의서 때문에 노조원들에게 39억원을 지급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회사측은 “파업 해도 월급을 받으면 누가 일을 하겠느냐. 앞으로 공공기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11일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실, 코레일네트웍스 등에 따르면, 민주노총 산하 전국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는 지난해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에게 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회사를 상대로 진행할 계획이다. 노조는 작년부터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 950명 중 25명만 대표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엔 파업 참가 조합원 전원이 소송에 참여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들이 이런 소송을 진행하는 건 2020년 7월 당시 강귀섭 사장이 “파업에 참여해도 평균 임금의 70%를 지급한다”는 합의서를 노조에 써줬기 때문. 2018년 취임한 강귀섭 사장은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의원 시절 보좌관을 지낸 인물로, 업무 전문성이 없는 전형적인 ‘낙하산 사장’이다. 강 사장은 당시 회사측에는 알리지 않고 노조 지부장과 둘이서 합의서를 작성했다.

노조는 이 합의서 작성 후인 재작년 11월 11일부터 작년 1월 15일까지 총 66일간 장기 파업을 했는데, 강 사장이 써준 합의서를 근거로 당시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현행 노조법은 ‘사용자는 파업에 참가해 근로하지 않은 이들에 대해선 해당 기간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규정한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명시한 것이다. 하지만 사측 스스로 노조에게 임금을 주겠다고 합의를 해주면 이행해야 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실에 따르면, 코레일네트웍스가 노조와의 소송에서 지면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 950명에게 총 39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당시 회사는 파업으로 약 71억원의 매출 손실을 기록했는데, 임금 39억원까지 주면 파업에 따른 회사 피해가 110억원에 달하는 것이다. 코레일 네트웍스는 기차 승차권 발매, 고객센터, 기차역 주차장 운영 등을 코레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자회사다.

문제는 이 합의서에는 유효 기간이나 불법 파업인지 합법 파업인지 여부도 명시되지 않아 앞으로도 노조가 파업을 할 때마다 임금을 지급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박정하 의원은 “앞으로 노조가 과도한 요구를 한 뒤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파업을 하고, 일하지 않아도 월급을 받는다면 누가 일을 하겠느냐”면서 “파업시 임금 지급은 민간 회사에서도 불가능한 일인데,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래선 정상적인 공공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코레일 네트웍스의 최근 5년간 영업이익이 총 10억원에 불과한 상황. 회사측도 앞으로 파업한 조합원에게 임금을 줘야 하면 파업이 더욱 늘어날 뿐 아니라 회사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코레일 네트웍스측은 전임 사장이 작성해준 이 합의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불송치 결과가 나왔다. 당시 강귀섭 사장은 노조 지부장과 둘이서 합의서를 작성한 뒤 사측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회사측이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사장실에서 문서를 출력한 기록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기록이 없었다. 통상적으로 임금 협상이나 단체 협약 같이 노사가 합의를 할 땐 노사의 수뇌부들이 동석한 상황에서 문서를 작성하고 날인하지만, 이 합의서에 대해선 강 전 사장 이외 다른 사측 인사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사측은 용산경찰서에 강 전 사장과 노조측 인사를 사문서 위·변조 및 행사,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형사 고소했지만, 경찰은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박정하 의원실에 따르면, 경찰은 당사자가 서명했기 때문에 위·변조가 아니고 당사자 사이의 약정이나 관행이 무노동 무임금(원칙)에 우선하고 근로자 생존권을 파업 기간 중에도 보장하는 데 노사 합의 목적과 취지가 있기 때문에 위법 행위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결정했다. 코레일네트웍스측은 검찰에 이의 신청을 해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상태다.

이 합의서를 써준 강귀섭 전 사장은 노조와 합의서를 작성한 일주일 뒤 법인카드 수천만원을 개인적으로 쓴 사실이 드러나 해임됐다.

코레일 네트웍스 강귀섭 전 사장이 2020년 7월 노조와 작성한 '파업 시에도 평균 임금의 70%를 지급한다'는 내용의 합의서.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