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23)씨가 5년째 돌보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병원을 나서고 있는 모습. /독자 제공

서울 구로구에 사는 김현주(23)씨는 어버이날인 8일, 하루종일 집에서 어머니(63) 곁을 지켰다. 여느 집안의 아들, 딸들처럼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5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어서다. 아버지는 병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하루 12시간 넘게 일한다. 그를 대신해 외동딸인 김씨가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의 삼시세끼와 약을 챙긴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화장실까지 부축해드리는 것도 김씨의 일이다.

이런 ‘간병 생활’은 김씨가 대학 진학을 위해 재수를 하던 19살때부터 지금까지 만 5년간 이어져왔다. 김씨는 “하루에 15만원에 달하는 간병비를 부담하기엔 집안 사정이 빠듯해 직접 어머니를 돌보게 됐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품어온 가수의 꿈을 포기하고 취업이 비교적 수월한 작업치료과로 진학했지만 김씨에겐 대학 생활도 녹록치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곧장 달려와 어머니를 재활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자 친구들은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병든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김씨에겐 오히려 다행인 일이었다.

주변에선 김씨를 보고 효녀라 칭찬하지만, 김씨의 심정은 복잡하다. 김씨는 “처음에는 ‘엄마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간병에 몰두했지만, 점점 주변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더라”며 “‘엄마 때문에 내 인생이 힘든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얼마 전 김씨의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게되자 그는 “내가 나쁜 생각을 해서 엄마가 암에 걸린 건 아닐까하는 죄책감이 들어 괴로웠다”고 했다. 김씨는 최근 합격 통보를 받은 병원 입사를 포기하고 계속 어머니를 돌볼 예정이다.

어버이날인 8일, 김씨처럼 집이나 병원에서 부모를 간병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장애·질병 등에 시달리는 부모·조부모를 돌보는 청년들인 이른바 ‘영케어러(young carer·가족 돌봄 청년)’다. 김씨는 “간병을 하느라 몸이 힘든 건 참을 수 있지만 마음이 힘든 게 가장 어려운 점”이라며 “나와 같은 ‘영케어러’들에겐 효녀·효자라는 칭찬보다는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어릴 때부터 돌봄 전선에 투입된 영케어러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어렵고, 이에 따라 빈곤이 대물림되는 악순환도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이들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와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인천 서구의 한 재활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고 있는 이모(29)씨의 하루는 아침 7시, 아버지를 씻기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씨의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의 식사를 챙기고 등에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시시때때로 아버지의 몸을 돌려 눕히는 일이 그의 하루 일과다. 밤 9시쯤 아버지가 잠이 들고 나면 그제야 이씨도 병실 한켠 간이 침대에 몸을 뉘이고 하루를 끝낸다.

이씨는 “그래도 다른 청년 간병인들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한 건설 회사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다친 아버지가 산재 판정을 받아 일부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씨도 한 달 300만원에 달하는 간병비가 부담돼 이씨가 지난해 10월부터 직장을 관두고 직접 아버지를 돌보기 시작했다. 이씨는 “아버지가 의식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로 간병을 하고 있지만 경력 단절로 인해 나중에 사회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 아버지를 돌보고 있는 전모(37)씨도 어버이날이었던 이날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다. 형틀 목수였던 그의 아버지는 6년 전 이맘때쯤 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뒤 줄곧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아버지가 대학병원, 재활병원, 요양병원 등을 오가며 치료를 받을 때마다 전씨는 아버지 곁에서 그 과정을 함께했다. 전씨도 원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니며 간병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전씨는 “어린 나이에 가족 간병을 시작해 도움이 절실했던 순간들이 많았지만 도움을 청하기 쉽지 않았다”며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수많은 청년들이 정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