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못찾는데, 종부세에게 또 당한다?
#1. 전남에 사는 A씨는 매매가 1억9000만원 아파트에 전세를 듭니다. 전세금은 1억8500만원. 전입신고, 확정일자까지 계약 당일 받았고, 등기부등본이 깨끗한 것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보증금 돌려받을 때쯤 주인은 연락이 끊깁니다. 임대인은 구치소 생활 중이었고, 겨우 연락이 닿지만 돈이 없다고 했죠.
결국 소송 끝에 전셋집 경매로 돈을 돌려받으려 했지만, 매매가에 육박한 전세보증금이 껴 있어 번번이 낙찰에 실패했습니다.
설상가상 집주인의 세금 체납까지 발견됐습니다. 1997년부터 자동차세 등 각종 세금 체납을 해온 집주인은 미납 세금만 약 1억원. 이 중 다행히 약 9000만원은 보증금보다 배당 후순위 세금이었지만, 1000만원 가량은 종부세, 재산세 등 당해세였죠. 이 와중에 경매는 계속 유찰되고 세금에는 가산이 붙고 있었습니다. 결국 A씨는 울며겨자먹기로 직접 경매에 참여해 집을 샀습니다. 보증금 가격에 집값 차액 500만원, 집주인이 밀린 당해세 1000만원을 더한 금액을 주고 집을 사게 된 겁니다.
#2. 서울에 사는 B씨는 전세 만기 1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집 주인은 엄청난 임대사업자였습니다. 주인은 170채를 전세를 줬고 약 10억원의 종부세를 체납했습니다. 그래서 전셋집에도 압류가 걸렸습니다. 전세가는 1억 2000만원, 매매가는 1억 1000만원이었습니다. 이미 전세가보다 매매가가 낮았습니다. B씨 집이 팔렸을 때, 약 480만원 가량의 종부세를 먼저 매매대금으로 정부에 갚아야 합니다.
만일 집이 한 번도 유찰되지 않고 원래 가격대로 잘 팔린다 해도 B씨는 원래 자기가 낸 전세금보다 1500만원 가량 적게 손에 쥐게 됩니다. B씨의 보증금 잔액은 새 집주인에게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집은 잘 안팔린다는 겁니다.
전세사기 집주인은 주로 갭투자로 여러 채를 소유하면서 보증금으로 보증금을 돌려막는 경우가 많아 체납이 많은 편입니다. 시간을 길게 끌수록 소중한 전세보증금은 조금씩 깎여 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소송해서 경매로 돈을 돌려받으면 되지 않나요?”
전세사기 수법을 파헤친 첫 사모당 기사가 나간 후, 독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입니다. 맞습니다. 전세 사기를 당했을 때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기 위해 가장 먼저 돌입하는 단계가 ‘전세보증금 반환 소송’입니다. 전세금 반환은 전세계약서 등에 기재된 집주인의 법적 의무기 때문입니다. 만일 승소한 뒤에도 집주인이 돈을 주지 않으면 강제로 집을 경매에 넘겨 전세금을 반환 받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법조계에선 전세보증금 반환 소송이 이기기 어려운 소송은 아니지만, 해결까진 최소 1년, 이것도 ‘희망적인 숫자’라고 말합니다. 보통 소송에만 최소 6개월이 걸리고, 경매 절차가 완료되는데도 6개월 가량 걸린다는 겁니다. 이것도 집주인이 항소를 하지 않는다고 가정한 시간입니다. 이렇게 째깍째깍 시계 초침이 가는 동안 피해자를 또 울리는 ‘의외의 문제’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소송하면 된다고? 높아진 ‘종부세’가 복병
한 법무법인 관계자의 말입니다. 집주인도 아닌 세입자가 왜 종부세 고민을 해야 할까요. 집주인의 부동산 관련 세금은 사실 내 보증금과 무관해 보입니다. 하지만 전세사기를 당한 뒤 보증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는 ‘집주인 세금도 내 돈’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실컷 경매까지 해서 집을 처분했는데 집주인이 내야할 세금이 밀려 있어서 돌려받을 보증금이 많이 깎일 수 있기 때문이죠.
보통 세입자가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제때 받아두었다면, 경매 과정에서 가장 먼저 돈을 돌려받을(배당) 권리를 갖게 됩니다. 다만 재산세와 종부세 등 ‘당해세’ 만큼은 임차인의 보증금보다 먼저 돌려받을 권리(선순위 채권)가 인정되고 있습니다. 집주인이 세금을 잔뜩 연체하고 있었다면 집이 팔려도 세입자가 우선적으로 돈을 받기 어렵습니다.
◇피해 키우는 전세가율 급증
요즘처럼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이 높아지는 것도 피해액을 높이는 원인이 됩니다. 전세가가 매매가에 육박하는 전셋집은 집을 팔아도 얻을 차익이 적기 때문에 경매에서 유찰되기 쉽습니다. 유찰이 거듭되면 경매시초가도 뚝뚝 떨어집니다.
전세사기 피해자 무료 상담을 해온 법무법인 한림 측은 “구매자는 없고, 피해 기간은 길어지니 울며겨자먹기로 직접 경매에 참여해 집을 사버리는 세입자가 많다”고 했습니다. 보증금이 계속 깎이는걸 지켜보느니 그 돈으로 집을 산 셈 치는 방법을 택하는 거죠.
한 전세사기 피해자는 자신이 경매로 어렵게 집을 샀을 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던 집주인의 뻔뻔한 한마디를 아직도 잊지 못 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나 덕분에 잘 된 거 아니에요? 요즘 같이 부동산값 폭등할 때 집도 사고.”
◇법적 대처, 변호사에게 물어봐드립니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집주인. ‘사기꾼’이란 생각이 먼저 들지만 슬프게도 법정에선 ‘심리적 사기꾼’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세 계약을 맺던 시점부터 ‘일부러’ 빚을 진 뒤 세입자를 속였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 고의성 부분을 증명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워서죠. 녹취 등 증거가 있다면 수월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전세 계약 전 과정을 녹취로 남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세 사기 전후, 어떤 법적 대처가 피해를 최소화할까요? 다음 사모당에서 법무법인 건우 임영근 변호사와 함께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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