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4시 50분쯤 충북 청주 고령산 산자락에 있는 풍주사.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울려 퍼지자 운동복에 슬리퍼 등 편안한 복장을 입은 일반인 10여 명이 절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이 중 상당수는 코로나가 한창인 도시를 떠나온 지 6개월~1년 남짓 된 20~30대였다. 이들은 깍두기와 콩볶음, 고추절임 등 사찰 음식으로 20~30분 만에 저녁 식사를 끝내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충북 청주 고령산에 있는 풍주사 고시원의 전경. 고시원 1층에는 자등원(自燈院), 2층에는 법등원(法燈院)이라고 적힌 현판이 붙어 있다. /박지민 기자

김모(28)씨는 일주일 전 이 절에 들어온 새내기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데 이 절에 들어오려고 두 달을 기다렸다. 요즘 오전 6시 30분에 나오는 염불 방송을 들으며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확진자가 계속 나오는 도시와 멀리 떨어져 공부하니 마음도 편하고 코로나 걱정도 없어 좋다”며 “합격 때까지 버티다 하산할 계획”이라고 했다.

2년째 코로나 사태가 이어지면서 코로나를 피해 아예 산속에 있는 절이나 고시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 20~30대가 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막상 외딴곳에 와 스스로를 고립시켜보니 집중도 더 잘되고, 코로나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과거 고시생들이 비슷한 이유로 산속 절 등에 틀어박혀 공부했던 모습이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9일 찾아간 청주 고령산 풍주사는 젊은 층 사이에서 ‘사찰 고시원’으로 알려져 있다. 절의 주지인 덕일 스님은 “80~90년대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합격자 40여 명을 배출하며 인기를 끌었다”면서 “요즘엔 이곳에 오는 이들이 공무원, 법무사, 임용고시, 경찰시험 준비생 등으로 다양하다”고 했다. 책상 하나를 둔 고시원 같은 방 14개가 현재 모두 차 있고, 석 달 정도를 대기해야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사찰 고시원에 들어가지 못한 수험생들은 산속 외딴곳에 있는 사설 고시원도 많이 찾아간다. 대구에 사는 용정민(24)씨는 작년 말 경북 칠곡 팔공산의 한 고시원에 들어갔다.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그는 “독서실에서 오랜 시간 마스크를 낀 채 공부하는 게 불편했는데 공기가 맑은 산에 들어와 마음 편히 공부하고 있다”며 “종종 팔공산을 오르며 소방관 체력 평가에도 대비한다”고 했다.

코로나 확산세가 이어지는 동안 정부가 수시로 거리 두기 단계를 바꾸는 게 싫어 산으로 왔다는 이들도 있었다. 속리산에 있는 한 고시원에서 1년간 공부하다 작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안모(29)씨가 그 경우다. 코로나 확산세가 시작된 2020년 서울에서 속리산으로 거처를 옮겨 공부했던 그는 “당시 거리 두기가 수시로 실시돼 다니고 있던 독서실이나 학원이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바람에 공부도 잘 안 되고 스트레스만 받았다”며 “산속 고시원으로 들어와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농촌지도사 자격증 준비생 박모(30)씨도 지난달 코로나 감염을 우려해 경북 상주시 팔음산에 있는 고시원에 들어갔다. 그는 “편의점에 가려면 여기서 걸어서 1시간 20분이 걸린다”며 “고립돼 있으니 산만한 시내보다 훨씬 집중이 잘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