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부산 지하철 1호선 시청역. 대합실 기둥에 붙어 있는 광고 포스터가 눈길을 잡았다. 사람들이 줄다리기를 하는 장면에 ‘모스크바, 오데사, 리야드. 함 이기보까(한번 이겨볼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2030년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부산시가 제작한 공식 홍보 포스터에 부산 사투리가 등장한 것이다. 부산시는 러시아 모스크바, 우크라이나 오데사,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등과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윤인식 부산시청 2030엑스포추진단 홍보팀장은 “박람회에 대한 국민 관심을 높이면서 부산이라는 지역 특색도 부각할 수 있어 사투리를 홍보 문구로 사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과거 촌스럽다거나, 표준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홀대받던 지역 사투리가 최근 지방자치단체 정책과 슬로건 등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지역 정서를 담으면서도 정감 있고 친숙한 발음 덕에 주민 호응이 이어지면서 사투리를 활용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경남 진주시문화관광재단은 지난 10일 사업비 3500만원을 들여 지역 토박이말을 모은 ‘진주사투리사전’을 출간했다. 사전엔 ‘에나’(진짜, 정말) ‘하모’(아무렴, 그래) 등 진주 특유의 사투리 5000여 개가 수록됐다. 사투리사전을 지역 도서관과 초·중·고등학교에 배부할 계획도 세웠다. 재단 관계자는 “지역 사투리는 지역 문화유산이자 재산”이라며 “후손들에게 지역 고유의 토박이말을 남겨줄 필요성에 따라 만들게 됐다”고 했다. 진주시 공공 캐릭터 이름도 ‘하모’다. 진주 남강에 서식하는 수달에서 모양을 땄다. 이름과 잘 맞아떨어지면서 지난해 진주시가 배부한 ‘하모’ 이모티콘 2만5000개가 20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대전시는 2020년 16년간 사용하던 브랜드 슬로건 ‘It’s Daejeon(이츠대전)’을 ‘Daejeon is U(대전이쥬)’로 교체했다. 공모와 시민 투표 과정을 거쳐 결정했다. ‘대전이 바로 당신’이라는 의미를 주면서 말 끝에 ‘~유’를 붙이는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로 재미와 친근함을 더한 것이다.
광주광역시 역시 문화관광 브랜드를 감탄사로 쓰이는 사투리 ‘오매’를 넣어 ‘오매광주’로 쓰고 있다. 대전과 광주의 공영자전거 이름은 ‘타세요’를 지역 사투리로 바꾼 ‘타슈’(대전) ‘타랑께’(광주)다. 경북도는 공공 농특산물 쇼핑몰 이름을 ‘사이소’(사세요), 경북도 공식 유튜브 채널 이름을 ‘보이소TV’(보세요)로 각각 붙였다.
김민국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사투리를 내세우는 것에 대해 “지역 언어에 대한 문화로서의 가치를 인식하게 됐고 사투리 사용에 대한 시선이 너그러워진 시대적 흐름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 교수는 “혹여 지역주의로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면 소중한 우리의 언어 자원을 지키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