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임플란트 제조업체인 오스템임플란트가 1880억원을 횡령한 재무 담당 팀장급 직원 이모(45)씨를 경찰에 고소했다고 3일 공시했다. 공시 직후 오스템임플란트는 코스닥 시장에서 거래가 정지됐다. 횡령 자금 1880억원은 오스템임플란트 자기자본(2047억원)의 92%에 해당한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이씨가 작년 10월 코스닥 반도체 장비업체 동진쎄미켐 주식을 1430억원어치 사들였다가 11~12월 매각한 ‘파주 수퍼개미’와 이름과 나이가 같아 동일인으로 추정한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1일 동진쎄미켐 주식 7.62%(1430억원어치)를 매수했다가, 작년 11월 18일부터 6차례에 걸쳐 팔고, 작년 12월 30일 기준으로 1.07%를 보유 중이다. 그는 주식 매각으로 1112억원 정도만 회수해 60억원(4.3%) 손실을 봤다.
오스템임플란트에 따르면, 이씨는 회사의 잔액 증명 시스템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기업 자금을 횡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이 회사 자금 담당자에게 매달 잔액 증명서를 보내는데 이씨가 이 서류를 조작해 실제 회사 계좌에 돈이 있는 것처럼 속였다는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오스템임플란트 투자자들에게 날아든 비보. ‘파주 수퍼개미’로 추정되는 이 팀장은 지난 12월 30일부터 잠적한 상태다. 증권가는 지난해 동진쎄미텍에 거액을 베팅했다 수십억원을 잃은 파주 큰 손이 이씨라는 걸 빛의 속도로 밝혀냈다.
이 팀장은 단독으로 범행에 나선 걸까. ‘손절’하고 남은 돈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회사는 정말 횡령 사실을 까맣게 몰랐을까. 앞으로 수사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사건이 어떻게 굴러갈지 궁금한 조선닷컴 독자들을 위해 옛 사건파일을 들춰봤다. 10여년 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든 ‘동아건설 박 부장 횡령 사건’이다.
◇1898억원 빼돌린 ‘동아건설 박 부장’
2009년 7월, 동아건설 박상두(당시 48세) 자금부장이 돌연 휴가를 내고 잠적했다. 그는 이날 다이어리에 “언젠가는 일이 발생하고, 문제가 될 거라 예상했지만 조금 빨리 터져버렸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솔직히 두렵다”고 썼다. 다이어리는 이어진다. “정신없이 수표 바꾸고 환전하고 바보처럼 하루를 보냈다”(7월 9일), “혼자 숨어 지내는 것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쉽지 않다”(7월 12일), “아직은 자수하고 싶지 않다”(7월 14일)….
뒤늦게 횡령 사실을 알아챈 회사는 박 부장을 경찰에 신고하고, 전 직원 휴가비를 걷어 현상금 3억원을 마련했다. 일간지에 박 부장 실명과 얼굴 사진 광고를 싣고, 공개 수배에 나섰다. 직원들은 박씨 집 근처에서 잠복 근무까지 했다. 경찰 5명으로 구성된 ‘박 부장 전담팀’은 3개월 간 수만㎞를 뛰며 추적했다. 추석 전날이던 그해 10월, 부인과 접선하던 박씨가 드디어 덜미를 잡혔다.
◇고교 선배·회사 동료까지 끌어들여
수사 결과 박 부장은 회사 인감을 마음대로 찍어서 사용하고, 허위 서류를 만들어 돈을 빼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부터 5년 간 횡령한 돈은 1898억원. 범행 동기는 2001년부터 빠져든 주식 투자와 경마 때문이었다.
거액을 빼돌리는 과정에는 조력자가 여럿 동원됐다. 그는 우선 시중 은행 지점에 근무하던 고교 선배 김모(당시 50세) 차장을 끌어들였다. ‘회사 자금을 이 은행에 집중 예치해 실적을 올려 줄테니 허위계좌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회사 돈은 잠시 꺼냈다 수익을 올린 뒤 다시 예치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며 김 차장을 안심시켰다.
박 부장은 같은 자금부 부하직원인 유모(당시 37세) 과장과 짜고, 회사 운영자금에도 손을 댔다. 예금 청구서에 법인 인감을 미리 찍어두는 방식으로 회사 운영자금 계좌에서 수백억원을 횡령했다. 고교 선배였던 은행 직원 김씨가 인사 발령이 나면서 회사 예금에 마음대로 손을 댈 수 없게 된 박 부장. 결국 다른 은행에 들어있던 채무변제금 예치 계좌까지 손을 뻗쳤다.
◇강원랜드에서 ‘강남 박 회장’으로 불려
횡령으로 구멍 난 자금을 메우려고 돌려막기 식으로 회사에 입금한 돈을 빼면, 실제 착복액은 974억원 정도. 박 부장은 이 돈을 전부 주식투자, 도박, 경마, 별장·외제차 구입 등에 탕진했다고 주장했다. 주식투자로 150억, 경마에 200억, 사설 카지노 250억, 마카오 카지노 100억, 강원랜드 카지노 190억, 포커 도박으로 50억원을 썼다는 것이다. 그는 경기도 하남시와 양수리에 타인명의로 각각 16억원·6억원대 주택을 구입했다.
강원랜드에서 ‘강남 박 회장’으로 불렸던 박 부장의 별장에는 고급 양주와 와인이 즐비했다. 수사 기관은 상당액이 가·차명으로 은닉됐을 것으로 보고, 국세청과 6000여장의 고액권 수표를 추적했다. 이후 박 부장이 경기도 이천 포도밭에 묻어뒀던 3억원이 발견됐다.
박 부장은 검거 직후 “1998년 이후 회사의 자금조달을 혼자서 담당했다. 자금출납 내역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어 조기에 발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에서 징역 22년 6월형이 확정돼 13년째 복역 중이다. 교도소에서 환갑을 넘긴 박 부장은 72세가 되는 해에 출소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