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기꾼 공개수배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헬스장을 차리기 위해 체성분 측정 기계를 구매하기로 했는데 판매자가 1300만원을 받고 잠적했다”며 “저 자식 신상 아시는 분은 쪽지를 달라”고 했다. 이어 게시글에 판매자 A씨의 전화번호, 얼굴 사진, 계좌번호 등 구체적인 신상 정보를 공개했다. 댓글에는 “혹시 얘 생년월일 알 수 있을까요?” “죽을 때까지 맞아야죠. 가족 것들도 오붓하게” 등 A씨에 대한 비난 의견 500여 개가 달렸다.

신상 털기 이미지.

최근 우리 사회에 무분별한 신상 털기가 재조명되고 있다. 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 숨진 채 발견된 손정민(22)씨의 친구 B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현재까지 B씨는 참고인 신분이지만, 인터넷에선 B씨와 그 가족들에 대한 ‘온라인 신상 털기’가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에 ‘손정민’, ‘한강 실종’이라고만 검색해도 B씨의 실명, 소속 대학, 얼굴 사진 등이 첨부된 게시물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각종 게시물, 영상 등에서는 이미 B씨를 사건 가해자로 단정한 채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정인의 구체적인 신상 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유포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행위를 조심해야 한다고 우려한다. 이른바 ‘온라인 신상 털기’가 ‘사이버명예훼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사이버명예훼손은 전파성이 높아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 70조에 의거 일반 명예훼손보다 가중처벌된다.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일반적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지만, 사이버명예훼손은 ‘7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인터넷에 타인의 신상을 언급하며 그에 대한 의견을 표출한다고 해서 모두 범죄가 되는 건 아니다. 우리 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사이버명예훼손에 ‘비방할 목적’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러나 현재 유행하는 온라인 신상 털기는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볼 여지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가령 범죄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손정민 씨의 친구 B씨를 범죄자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문제 될 수 있다. 경기남부법률사무소의 김정훈 변호사는 “단순히 누군가의 신상을 유포하는 것을 넘어 그를 형사사건의 가해자로 특정하고 비난하는 등의 행동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명예훼손이 성립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다만, 위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해도 ‘공익’을 위했다면 실질적으로는 위법이 아니라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유 즉 위법성 조각사유가 발생한다. 실제로 온라인 신상 털기에 나선 많은 이들이 공익 또는 정의 구현을 주장한다. 그러나 개인이 주장하는 사적 정의로 타인의 개인정보, 명예 등 권리가 보호 받지 못한다면 처벌 대상이 된다는 게 사법기관의 판단이다. 지난달 28일 성범죄 혐의가 있는 이들의 정보를 임의로 공개해온 ‘디지털 교도소’의 운영자가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명예훼손) 위반 등으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의 자의적인 정의 관념에 기대어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개인정보를 공개하여 명예를 훼손했다”며 “사건 범행은 그 특성상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르고 이미 유포된 정보를 삭제하여 원상회복을 할 방법도 마땅히 없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의 가해자로 낙인찍히거나 저지른 범죄 이상의 비난을 받기도 함으로써 인격권과 사생활의 극심한 침해를 입었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다가 극심한 스트레스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도 발생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온라인 신상 털기’는 최근 온라인상에서 ‘응징 콘텐츠’가 인기를 몰면서 공공연하게 확산되는 추세다. 지난 5일 서울 관악구에서 택시기사를 폭행한 20대 남성 C씨에 대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버들이 신상 공개에 나서기도 했다. C씨의 개인정보가 담긴 SNS 페이지 등을 캡처해 올린 게시물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공유된 것이다. 한 유튜버는 모자이크 처리 없이 C씨와 그의 어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 9일에는 다른 유튜버가 실시간 방송으로 16개월 입양아 정인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양모 장모씨가 그의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불법적으로 입수해 공개했다. 이 유튜버는 “(편지 공개에 따른) 처벌을 달게 받겠다”며 당당히 위법 사실을 밝혔다. 경찰청이 제공한 ‘최근 5년간 사이버명예훼손 발생 현황'에 따르면 사이버명예훼손 범죄는 2015년 4337건에서 꾸준히 증가해 2019년은 5년 전의 1.7배를 넘는 7594건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