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문구완구시장의 한 장남감 상점을 찾은 시민들이 선물을 고르고 있다. /뉴시스

“분홍색은 여아용, 하늘색은 남아용입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유아용품 매장에서 “남녀 쌍둥이에게 선물할 의류를 보여달라”는 말에 직원이 서로 다른 색상의 샤워가운을 보여주며 이같이 답했다. 색깔을 제외한 기능, 크기 등 다른 면에선 동일한 제품이다.

이처럼 영유아 제품을 성별에 따라 구분하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이런 식으로 색깔을 구분하고, 성별을 표기하는 행위는 어린이들에게 성차별적 편견과 성 역할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성별에 따라 색깔을 구분하는 방식을 탈피해 성 중립적(gender-neutral)인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는 지난해 1월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기능과 무관하게 분홍색은 여아용, 파란색은 남아용으로 표시하는 것은 남녀 상징 색깔을 고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등 성차별적 인식을 조장하고,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며 영유아 제품 생산·판매업체 8곳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해당 업체 모두 “진정인의 주장에 충분히 공감하며 상품의 색깔에 따라 성별을 표기하는 방식을 전면 수정·개선하겠다”는 취지의 의사를 밝혔다. 일부 업체는 “성 차별 조장 의도는 없었으며, 소비자 편의를 위해 색을 달리 표기해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매, 유통상 편의를 위해 상품에 성별을 표기했고, 색깔에 따라 성별을 구분하는 사회·문화적 관행에 익숙한 소비자 선호를 반영해왔다는 얘기다.

인권위는 이런 의견을 내면서도, 업체들의 색깔 구분이 ‘차별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해당 진정은 각하 결정을 내렸다. 파란색 제품에 ‘남아용’이라고 표기돼 있더라도 여아가 파란색 남아용 제품을 구매하는데 실질적인 제한은 없어 차별 행위가 발생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영유아 제품에 대한 성 구분을 없애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지난 2015년 남녀로 구분해왔던 아동용 완구의 성 구분을 없앴다. 영국의 육아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인 ‘멈스넷(mumsnet)’은 지난 2012년 ‘렛 토이스 비 토이스(Let Toys Be Toys)’라는 아동 완구 성별 구분을 없애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멈스넷이 캠페인을 벌인지 1년 만에 14개 주요 소매점 중 절반 이상에서 남녀 구분 문구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