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에 ‘배달 완료’가 떴는데 음식이 안 왔어요.”

쿠팡이츠 배달 기사 김모(33)씨는 지난 17일 낮 12시쯤 한 고객의 전화를 받았다. ‘벨을 누르지 말고 문 앞에 음식 놔달라’고 해, 집 앞에 음식을 배달하고 다음 배달을 하러 가던 중 걸려온 전화였다. 김씨는 “다시 확인해도 맞는 주소로 배달했는데, 고객은 계속 못 받았다고 했다”며 “고객은 돈을 돌려받거나, 음식을 다시 배달받기를 요구했는데 둘 다 본인한테는 이득인 것 아니냐”고 했다. 결국 해당 고객은 쿠팡 고객센터에 환불 요청을 했고, 센터에선 김씨에게 ‘실제 배달을 했다는 증거사진’을 요구했다. 찍어둔 사진이 없던 김씨는 당일 음식값과 배달비 등 6만원을 배상해야 했다. 김씨는 “내가 이런 일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 사진을 찍지 않았다”며 “그 이후에는 귀찮더라도 아파트 동이 보이는 현관과 문앞 배달 완료된 음식까지 꼭 사진으로 찍어놓고 있다”고 했다.

배달 기사들은 갑질 고객에 대처하기 위해 헬멧에 액션캠을 부착하고 다닌다. /독자 제공

‘‘코로나로 ‘문 앞에 음식을 두고 가라’는 비대면 배달 요청을 악용하는 일부 고객들이 생겨나면서, 배달 기사들이 속속 대처법을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음식 배달을 시키고 “배달을 받지 못했다”며 음식값을 돌려받는 이들이다. 기사들 사이에선 일명 ‘쿠팡거지’라 불린다. 배달 기사들이 음식을 몰래 빼먹는다며, 일부 고객들이 ‘배달거지’라고 조롱하던 것에 대응한 별명이다. 쿠팡이츠는 고객이 ‘음식을 못 받았다’며 환불을 요청했을 때, 배달 기사가 본인 탓이 아님을 입증하지 못하면 해당 비용을 고스란히 기사에게 물린다. 한 인터넷 배달 기사 커뮤니티에는 지난달 중순부터 한 달새 쿠팡거지 관련 후기가 30여개 올라오기도 했다.

배달 기사들은 이런 갑질 고객에 대한 대처법을 공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배달 완료된 음식과 날짜·시간·주소를 같이 찍을 수 있는 ‘타임스탬프’ 앱을 사용하는 것이다. 배달 기사 이모(50)씨는 “시간·주소가 함께 기록되는 덕분에 작년 12월 관악구에서 만났던 쿠팡 거지에게 당하지 않았다”며 “고객 항의를 받아도 내가 배달 완료했다는 증빙자료가 있기 때문에 무서울 게 없다”고 했다.

배달 기사들은 갑질 고객에 대처하기 위해 배달 가는 집마다 날짜, 주소가 함께 찍히는 사진을 남기기도 한다. /독자 제공

액션캠·바디캠 같은 소형 카메라로 배달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하는 배달 기사들도 있다. 한 배달대행 업체에서 일하는 배달 기사 이승준(42)씨는 지난해 ‘갑질 고객’을 만난 뒤 44만원 상당의 액션캠을 사서 헬멧에 부착했다. 지난해 12월 26일 경기도 이천시의 피자 매장에서 음식을 픽업해 근처 호텔에 배달을 간 이씨는 손님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나오자 “손님 나오실 때 마스크 쓰고 나오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약 30분 후, 이씨는 피자 매장 사장으로부터 “고객한테 ‘기사가 싸가지가 없고, 피자는 떡이 되어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결국 고객은 피자를 환불받았고, 이씨는 해당 매장에서 더는 배달 일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이씨는 “매장과 호텔이 5분도 안 되는 거리라 피자가 떡이 될 리가 없었다”며 “고객의 한마디에 주요 배달 자리가 하나 없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 이후로 이씨는 액션캠을 헬멧 옆에 부착하고, 배달 일을 하는 9시간내내 켜둔다. 이씨는 “무겁기도 하고, 화장실 갈 때는 꺼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손님과 마찰이 생겼을 때 쓸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하는 것인만큼 마음만은 편하다”고 말했다.

일부 배달 기사들은 갑질 고객을 만난 아파트·빌라 정보를 공유하는 일종의 ‘블랙리스트’를 만들기도 한다. ‘대치 OO아파트에도 쿠팡거지가 있다 조심하라’ ‘중랑구 OO 빌라 O층 엘리베이터 내리면 바로 보이는 집’ ‘서대문 OO아파트 OO동, 금천구 OO아파트 OO동 조심하라’와 같은 식이다. 이 과정에서 사진·게시물로 특정 집 주소가 공개되면서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