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까지 급식소에서 멀쩡하게 밥을 먹었는데, 어제 먹이통 앞에 죽어 있더라고요.”
지난 1월, 경북 김천시에 위치한 농림축산검역본부. 이런 내용의 의뢰서와 함께 아이스팩에 둘러싸인 고양이 사체가 들어왔다. 경기도청이 한 주민의 신고를 받고, “고양이가 죽은 이유를 알려달라”며 이곳에 부검(剖檢)을 의뢰한 것이다. 멸균 장갑을 낀 검사관은 부검대 위에 놓인 고양이의 입과 항문에서 혈액이 흘러나왔는지, 외관상 다친 흔적이 있는지 살폈다. 메스를 들고 가슴을 열어 조직 검사를 하자 폐렴을 유발하는 세균, 장염 유발 바이러스가 나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낸 위(胃) 내용물에서 독극물은 검출되지 않았다. 최종 사인(死因)은 ‘세균성 폐렴 및 바이러스성 장염’. 검사관은 “누군가 사료에 농약을 탄 건 아니다”라고 했다.
최근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동물 학대 여부, 사인 등을 밝히기 위한 동물 부검이 빠르게 늘고 있다. 21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개·고양이에 대한 부검 의뢰는 지난해 역대 최다인 556건으로 전년(290건)보다 92% 늘었다. 의뢰자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반 시민부터 시민단체, 경찰, 지자체 등 다양하다. 과거에는 동물이 죽으면 사인을 찾기보다는 곱게 묻어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동물 변사(變死)’를 경찰에 신고하고 부검까지 원하는 이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경찰에 접수되는 동물 관련 신고도 대폭 늘었다. 2017년 동물보호법 위반 신고는 398건이었지만, 2019년엔 914건으로 급증했다. 작년 6월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 인근에서 참새 80마리와 비둘기 12마리가 외상 없이 폐사한 사건도 경찰을 통해 부검 의뢰가 들어왔다. 사체에서 무색·무취한 고독성 농약 성분이 검출됐고, 결국 경찰은 “옷에 떨어진 새똥 때문에 화가 나서 그랬다”는 70대 남성을 붙잡았다.
경찰도 최근 동물의 생명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자 수사 지침서를 개정해 동물을 “인간의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는 피해자’”로 규정했다. ‘범죄 신고를 접수할 때 대상이 동물이라는 이유로 경시하거나, 범죄 구성 요건에 해당하는데도 반려해선 안 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사람의 시신은 국과수에서 부검하지만, 동물 부검은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한다. 동물 부검은 ‘질병 진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구체적인 사인을 찾는 시신 부검과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국과수에서 ‘목 부위 자상’과 같은 의견을 낸다면, 검역본부에선 ‘두부(頭部) 골절이 확인됐다’는 정도만 밝히는 것이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팀장은 “동물 부검이 검역본부의 고유 업무로 편제돼 있지 않아 사망에 이르기까지 인과 관계는 나오지 않고 단순 부상 사실만 확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동물 부검도 범죄 연관성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황철용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동물도 국과수처럼 법의학적인 테두리 안에서 부검할 수 있도록 검역본부 인력을 늘리고 체계를 확립하는 방식의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측은 “해외 사례를 조사해 국내 반려동물의 새로운 부검 기준 도입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