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둑계의 거목 김인 9단이 4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고인은 194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58년 15세 때 프로 기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2년 당시 세계 바둑의 메카로 통하던 일본 유학을 떠나 조남철의 스승이기도 했던 고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9단을 20개월 동안 사사했다.

김인 9단

당시로선 파격적인 3단을 곧바로 인허받은 김인이 일본 유망주들을 상대로 8할대의 고공 승률을 보이자 일본 매스컴들은 오다케(大竹英雄), 린하이펑(林海峰) 등 당시 두각을 드러낸 동양 3국 천재들을 한데 묶어 ‘김죽림(金竹林) 시대 개막’을 예언했고 곧 현실이 됐다.

1963년 귀국한 김인 5단(당시)은 1966년 10기 국수전에서 한국 바둑 개척자 조남철 7단(당시)의 철옹성을 허물면서 새 시대를 열어젖혔다. 지난 2018년 프로 기사 데뷔 60주년을 기념해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조 선생에게 국수 타이틀을 넘겨받았을 때가 내 바둑 인생에서 가장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9단은 이후 1971년 15기까지 국수 6연패를 달성하면서 ‘김 국수’ ‘영원한 국수’ 라는 별호로 불려왔다.

김 9단은 열 살 아래 후배 조훈현(68) 9단에게 일인자 자리를 넘길 때까지 왕위전과 패왕전을 7연패하는 등 10여년 간 총 30회에 걸쳐 우승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는 일본에 눌려 지내던 한국 바둑이 세계를 호령하게 된 과정에서 첫 주춧돌을 놓은 거목이었다. 조남철 김인 조훈현을 거친 한국 바둑 일인자 계보는 이후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 신진서로 이어져왔고 그중 2명이 세상을 떠났다.

한국 바둑 1, 2세대인 조남철(오른쪽) 9단과 김인 9단의 1978년 제13기 패왕전 도전 대국 광경. /한국기원

63년간 프로 기사로 활동하는 동안 남긴 총전적은 1568전 860승 5무 703패. 1968년엔 40연승을 달리기도 했는데 이는 현재까지 한국기원 최다 연승 1위 기록으로 남아있다. 1967년 작성한 연간 승률 88.1%(37승 1무 5패)는 역대 3위에 해당한다.

그의 바둑 스타일은 듬직하면서도 두텁다는 의미인 ‘중후(重厚)’로 요약된다. 기풍처럼 일상생활에서도 소탈하면서 호방한 선비 기질을 발휘해 후배 바둑인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1971년부터 4년 연속 한국기원 기사회장을, 2004년부터 최근까지 이사직을 맡아 행정에도 기여했다. 2007년부터 매년 늦가을엔 그의 이름을 딴 국제 시니어 바둑 대회가 고향인 강진군에서 열린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옥규씨와 1남(김산)이 있다. 발인 6일 10시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02-2227-7500)에서 한국기원장(葬)으로 거행된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시 시안추모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