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의거를 주도한 장진홍 독립운동가의 현손(玄孫)이 고조 할아버지를 그리며 코로나 극복 의지를 다졌다.
1일 칠곡군은 대구 왕선초에 재학 중인 장예진(8)양이 3·1절을 맞아 코로나 극복 응원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장 양은 지난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의거의 주역인 장진홍 의사의 현손이다.
장 양은 “3·1 운동 정신으로 코로나 극복”이라는 글씨와 함께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서 싸우는 소녀들이 담긴 그림을 그렸다. 독립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잃지 않고 광복을 맞은 선열들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내겠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장 양은 “3·1 운동처럼 모두가 한 마음을 모아 코로나를 이겨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진홍 의사는 20세가 되기 전 비밀항일결사인 광복단에 입단하면서 만주와 러시아 하바로프스크 등을 넘나들며 교포 청년들을 모아 군사 훈련을 이끌었다. 1919년 3·1 운동 당시에는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제암리 학살 등 우리 민족에 대한 일본의 만행 자료를 수집해 미국 군함에 전달해 세계 각국에 알리려 했다.
부산에서 조선일보 지국을 경영하며 독립운동의 기회를 엿보던 장 의사는 지난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의거로 은행원과 경찰관 수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건물 일부를 파괴했다.
이후 안동과 영천, 일본 오사카에서 또다른 거사를 기획하던 중 체포됐다. 장 의사는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모든 사건은 나 혼자 한 일”이라고 주장하며 끝내 동료의 이름을 대지 않았고, 대구지법·대구복심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을 때마다 웃으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1930년 사형 판결을 받은 장 의사는 옥중에서 자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장 의사의 손자인 장상규(82)씨는 현재 광복회 경북도지부 칠곡·고령·성주연합지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증손자이면서 장 양의 아버지인 장준희(52)씨는 칠곡군의 공직자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할아버지와 3·1 운동의 정신을 기리며 코로나 극복을 기원한 장 양의 마음이 곧 모든 칠곡군민들의 마음”이라면서 “코로나 위기 앞에 3·1 운동 정신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한 마음 한뜻으로 단결해 종식을 앞당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