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낙동강변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두 남성이 재심에서 누명을 벗었다. 사건 발생 31년 만이다. 부산고법 형사1부(재판장 곽병수)는 지난 4일 강도·살인 등 혐의로 21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최인철(60)·장동익(63)씨가 제기한 재심 청구 선고 재판에서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최씨에게는 공무원 사칭 혐의에 대해 일부 유죄 취지로 6개월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며 이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산 낙동강변 살인사건(빨간색 테두리 제목 기사)을 다룬 본지 1990년 1월5일자 사회면. /조선일보DB

◇낙동강변서 발견된 여성 시신

낙동강변 살인 사건은 지난 1990년 1월 4일 부산 사상구 낙동강변에서 차를 타고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30대 여성이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여성과 함께 있던 남자가 “괴한 2명이 공격했다”고 경찰에 진술하면서, ‘엄궁동 2인조 살인 사건’으로도 불렸다.

경찰은 이 남자의 진술에 따라 괴한들을 쫓았지만 검거에 실패했다.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는 듯 보였다. 사건 발생 1년 10개월 만인 1991년 11월 8일, 경찰 공무원 사칭 혐의로 구속된 최인철씨와 장동익씨로부터 “살인을 저질렀다”는 자백이 나왔다. 미제 사건이 해결되는 듯 했다.

당시 낙동강변 주변에서 경찰을 사칭하며 돈을 갈취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위협한 뒤 돈을 받고 보내주는 수법이었다고 한다. 이들 중 한 명은 키가 크고, 다른 한 명은 키가 작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범행 수법과 장소 등이 비슷해 보였다. 낙동강변 살인 사건 피해 여성과 함께 있다가 도망쳐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고 말한 남성도 사건 직후 경찰에 “한 명은 키가 크고, 한 명은 작았다”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최씨와 장씨 두 사람이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약 두 달 뒤인 1991년 12월 30일 두 사람은 강도·살인 등 혐의로 기소됐다. 10개월 뒤인 1992년 8월 이들은 각각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은 항소했지만 1993년 1월 7일 부산고법 2심에서도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1993년 4월 대법원 상고가 기각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최씨와 장씨는 옥살이 21년 만인 2013년 모범수로 특별 감형돼 출소했다.

1990년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최인철, 장동익씨가 지난해 1월6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에 앞서 당시 변호사 선임 서류를 취재진에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위자백” 주장에도 무기징역 선고받고 21년

두 사람은 검찰 수사 때부터 “경찰에게 고문을 당해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1991년 11월 8일 붙잡힌 뒤 11월 11일부터 15일까지 닷새 동안 부산 사하경찰서 수사관으로부터 자백을 강요 받았고, 모진 폭행과 물고문 등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했다. 계속되는 고문을 못 이겨 경찰이 불러주는대로 썼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검찰과 법원에 “허위 자백”이라 밝혔지만, 누구도 이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변호인으로 이들의 2·3심을 맡았다. 장씨는 시력이 장애에 가까울 정도로 나빴다. 이 사실을 최씨도 알고 있었지만, 경찰의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장씨를 공범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최씨는 “21년간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살인자라는 것 때문에 가지 못했고 가족들, 동생들이 결혼해도 밖에 나가 보지 못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두 사람은 서울행정법원 등에 행정심판을 3차례 요구했지만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그 뒤 재심 전문 변호사인 박준영 변호사를 만났다. 지난 2017년 5월 8일 부산고법에 재심을 청구하고, ‘잃어버린 21년’을 되찾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4일 오전 부산고등법원에서 경찰 고문에 못 이겨 살인죄 누명을 쓴 채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 당사자 최인철씨와 장동익씨 재심 선고 공판이 열리고 있다. 부산고법 제1형사부는 4일 재심청구 선고 재판에서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연합뉴스(부산사진공동취재단)

◇대검 과거사위 “고문으로 범인 조작” 발표

2019년 4월 대검 과거사위원회가 이 사건에 대해 “고문으로 범인이 조작됐다”는 결과를 냈다. 과거사위는 “두 사람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부터 지금까지 고문에 의해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고문의 방법과 장소, 고문에 가담한 경찰관들의 행동 등 모든 면에서 매우 일관되며, 객관적으로 확인된 내용과도 부합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당시 경찰이 두 사람으로부터 자백 진술을 받아낸 이후로도 종전 자백 진술의 내용을 일부 변경하는 과정에서 재차 물고문을 자행했다”며 “그 과정에서 사실은 현장 검증을 이틀에 걸쳐 했음에도 하루에 마친 것처럼 검증 조서를 허위로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검증위는 이 같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의 고문 사실을 당시 검찰이 확인도 하지 않았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고문 피해 주장에 대해 확인을 전혀 하지 않은 채 기소했다며 검찰의 잘못도 지적했다.

과거사위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재심 논의도 급물살을 탔다. 부산고법은 6차례에 걸쳐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심문을 벌인 끝에 지난해 1월 재심을 결정했다.

경찰 고문에 못 이겨 살인죄 누명을 쓴 채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 당사자 최인철(왼쪽)씨와 장동익씨, 박준영 변호사(가운데)가 4일 오전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손을 맞잡고 있다. 부산고법 제1형사부는 이날 재심청구 선고 재판에서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연합뉴스

◇사건 31년 만에 억울한 누명 벗어

재심 결정 1년 1개월 만인 지난 4일, 재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경찰에서 가혹 행위와 제출된 증거가 법원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21년이 넘는 오랜 기간 수감 생활을 하는 고통을 안겼다”며 “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심 판결로 인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피해가 회복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전했다. 사건 발생 31년 만이다.

선고 직후 법정 밖에 선 장씨는 “33살에 수감될 때 딸이 2살이었는데, 나오니 딸은 24살이 됐고, 저는 55살이 됐다”며 “저와 같은 사람이 더 있어선 안 된다. 100명 진범 놓쳐도 1명 억울한 사람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최씨는 고문 경찰에 대해 “재판에서도 부인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용서하느냐”며 “그 사람들은 악마다. 절대 용서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씨와 최씨는 재판 과정에서 경찰의 잘못 인정과 사과를 기대했지만 들을 수 없었다. 억울한 누명을 벗었지만,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함께 해당 경찰관들에 대한 형사 고소 등도 진행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