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3일 0시 8분, 이규원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 소속 검사는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긴급출금 요청서를 법무부 산하 인천공항 출입국 부서에 제출했다. 서류에 기재된 요청 기관은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 사건 번호는 ‘중앙지검 2013년 형제 65889’였다. 이 사건 번호는 가짜였다. 2013년 김 전 차관이 성폭행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건 번호였다. 그 전에 이미 출국심사를 통과하고 탑승 게이트 앞에 있었던 김 전 차관은 0시 10분쯤 출입국 직원들로부터 “출국이 금지됐다”고 통보받고 태국행 비행기 탑승을 제지당했다.
인천공항 출입국 공무원 A씨는 김 전 차관 출금이 집행된 이후인 이날 0시 34분 출국 금지 요청을 전산 입력했다. 사건 번호란은 비워 뒀다. 출금 요청 기관(진상조사단)과 사건 번호 생성 기관(서울중앙지검)이 달랐기 때문이다. 0시 39분 출입국 직원들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에는 “양식도, 관인도 어뜩하죠(어떻게 하죠)”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사건 번호에도 문제가 있었을 뿐 아니라, 출금 요청서에 반드시 찍혀 있어야 할 수사 기관장의 관인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 검사는 오전 2시 22분 법무부 출입국심사과 공무원 B씨에게 긴급출금 승인 요청서를 전달했다. 긴급 출금한 것을 법무장관에게 사후 승인받기 위한 행정 서류다. 서류에 적힌 요청 기관은 ‘대검 진상조사단’에서 ‘서울동부지검장 한찬식 대(代) 이규원’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한찬식 지검장 관인이 없었다. 사건 번호는 여전히 서울중앙지검 번호였다. B씨는 오전 3시 37분 승인 요청서 내용을 전산 입력하며 요청 기관은 대검 진상조사단으로 입력했지만 사건 번호는 공란으로 뒀다. B씨도 요청 기관과 사건 번호 생성 기관이 다른 것을 이상하게 본 것이다.
이 검사는 오전 7시 1분 사건 번호를 ‘동부지검 2019년 내사 1호’로 바꿔 적은 승인 요청서를 다시 B씨에게 전달했다. 존재하지 않는 가짜 번호였다. 이성윤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동부지검 고위 관계자에게 동부지검 번호를 붙인 사실을 통보하고 무마를 부탁하는 취지로 전화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오전 8시 20분쯤 B씨와 출입국심사과 서기관 C씨의 카카오톡 대화에 따르면 긴급출금 승인을 두고 법무부 출입국 간부 사이에도 이견이 있었다. 출입국심사과 과장은 승인하지 말자고 했다. 사건 번호가 내사 번호여서 긴급출금 대상인 ‘피의자’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내사 번호 자체가 가짜라는 사실까지는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급자인 차규근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본부장은 “피의자인지 여부는 수사기관이 판단할 사항”이라며 승인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9시 52분 B씨는 긴급출금 승인을 전산 입력했다. 그렇지만 사건 번호는 여전히 비워두었다.
그런데 이날 낮 12시 31분, B씨는 비어 있던 사건 번호란에 서울동부지검의 가짜 내사 번호를 입력했다. 출금 요청서 접수로부터 12시간이 지나서였다. 요청 기관도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 이규원 검사로 바꿨다. 수사기관이 내사 번호를 근거로 적법하게 출금 조치한 것처럼 바꾼 것이다. B씨는 조사를 받으며 “김 전 차관이 나중에 출금 통보를 받고 (사건 번호가 없으면) 이의 제기할까 봐 승인 요청서 내용에 맞춰 수정했다”고 했다. ‘전산 조작’을 한 것이다.
전산 조작을 B씨 단독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낮 12시쯤 B씨와 동료의 카톡 대화에는 당시 법무장관 정책보좌관이던 이종근 대검 형사부장이 등장한다. B씨는 “정책보좌관 한 분이 계속 와서 얘기한다” “계속 검찰에 전화해서 여기(법무부 출입국심사과) 얘기하는 것 같다”고 했다. 법무부 차원에서 불법 출금을 사후 은폐·무마한 정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