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풍경이 기술을 만나 달라지고 있다. 독서 습관의 변화를 선도하는 주인공은 인공지능(AI). 독자의 눈동자를 추적해 스마트폰·태블릿 PC 화면에 나타난 전자책 지면을 알아서 넘겨주거나, 램프에 달린 카메라로 책에 적힌 활자를 해독하고 낭독해준다. 넷플릭스나 유튜브의 영상 추천 기능처럼 소설을 읽는 사람의 취향을 분석해 흥미를 느낄만한 콘텐츠를 권하기도 한다.
◇스스로 넘어가는 페이지
8일 스마트폰으로 전자책 소설 한 편을 열었다. 메뉴에 있는 ‘시선 추적' 기능을 활성화하자 화면 중앙에 빨간 점이 나타났다. 이 점을 3~4초간 응시하니 자동으로 눈동자의 초점이 인식됐다. 이런 식으로 한 페이지를 다 읽고 화면 하단을 응시하니 ‘>’ 화살표 버튼이 떴다. 이 버튼을 1.5초간 바라보자 자동으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이렇게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다. 전자책 서비스 ‘밀리의 서재'가 지난달 선보인 ‘시선 추적’ 기능 때문이다. 이 회사 방은혜 팀장은 “요리나 작업을 하며 손을 쓰기 힘든 상황에서도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며 “몸이 불편해 손을 쓰기 어려운 사람들의 독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밀리의 서재는 시선 추적 기능을 PDF나 채팅형 독서 콘텐츠인 ‘챗북'에도 확대할 방침이다.
◇책만 펼쳐놓으면 알아서 램프가 낭독
책을 펼쳐놓기만 하면 AI가 알아서 읽어주는 독서등(燈) ‘클로바 램프’도 있다. 종이책을 램프 아래 놓으면 조명 갓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AI가 글자를 인식하고, 아래에 달린 AI 스피커가 책을 낭독해준다. 문자 판독 기술로 한글과 영어를 가리지 않고 읽을 수 있는 데다, 음성 합성 기술을 이용해 자연스러운 아이나 성인 목소리로 한글 또는 영어 책을 읽어준다. 글을 모르는 미취학 아동,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이 혼자서도 종이책을 읽을 수 있다. 네이버가 지난 10월 출시한 이 제품은 지금까지 7500대가 팔렸다. 네이버에 따르면 이 제품 이용 고객들은 하루 평균 50쪽 이상을 읽는다고 한다. 지금까지 읽힌 페이지 수는 약 290만장에 달한다.
◇좋아할 만한 웹소설도 맞춤 추천
웹소설·웹툰 서비스를 하는 카카오페이지에선 넷플릭스처럼 AI가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해 좋아할 만한 다른 콘텐츠를 추천해준다. 누적 독자 수 270만 명을 넘긴 인기 웹소설 ‘나혼자만 레벨업’을 선택하면 ‘심장 뛰게 하는’ ‘맛깔나는’과 같이 AI가 분석한 유저 반응이 키워드로 뜬다. 이를 누르면 같은 독자 반응을 보인 웹소설이 1위부터 100위까지 쭉 나타난다. 보통 인기작일 경우 10만 개가 넘는 감상평이 댓글로 달린다. AI가 방대한 댓글 빅데이터를 분석해 ‘작화가 미친’ ‘찐사랑인’ ‘드라마 만들고 싶은’ 등 여러 키워드로 작품의 특징을 족집게처럼 뽑아낸다. 카카오페이지 관계자는 “감독과 배우, 주제를 분석해 다른 작품을 추천해주는 넷플릭스나 유튜브에서 착안해 추천 기능을 적용했다”며 “독자들은 매월 AI 취향 찾기 기능을 200만 건 이용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