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 1학년 최모(22)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생활비를 혼자 해결해왔다. 학비는 부모님이 지원해주지만 생활비까지 보태줄 집안 형편이 안 된다. 4수 끝에 지난해 대학에 합격한 그는 재수 시절부터 온갖 아르바이트(알바)를 전전했다. 수업을 마치고 야간 경비, 술집 서빙을 했고, 수업이 없는 날엔 공사장 일용직으로도 일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세끼 밥값과 휴대전화 요금, 교재비를 충당했다. 방학 땐 목돈이 생기는 학원 강사를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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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최씨가 4년 만에 처음으로 알바 없는 겨울을 나고 있다. 백방으로 수소문해도 알바 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알바가 뚝 끊긴 건 작년부터였다. 월 80만원씩 받으며 영어 학원 강사로 일했는데, 작년 6월 코로나 여파로 학원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으며 강사 자리에서 잘렸다. 9월엔 외국 맥주 회사 판촉 일을 구했다. 매주 두 차례, 낮 12시부터 밤 10시까지 대형마트에서 맥주캔을 진열하는 일이었다. 월 65만원씩 받았지만 이마저도 지난달 초 해고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되자 회사에서 그만 나오라고 했다. 최씨는 “이번 겨울에 알바를 하려고, 카페·술집 등 15곳에 지원서를 넣었는데 지금까지 한 곳도 연락이 없다”며 “최근엔 생활비가 완전히 떨어져 친구에게 10만원을 급하게 빌렸다”고 했다.

◇'생계형 알바' 전선에서 밀려나는 청년들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겨울 아르바이트’ 시장은 저소득·서민층 대학생들에겐 생계와 학업을 이어갈 삶의 전선(戰線)이다. 부모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을 형편이 안 되는 학생들은 이 기간 알바에 다음 학기 학비와 생활비를 걸고 있다. 그런 겨울 알바 시장이 올해는 꽁꽁 얼어붙었다. 청년들이 주로 일하는 카페⋅술집⋅음식점들이 코로나 영업 제한 조치로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임대료·인건비를 못 견디고 문을 닫거나, 있는 알바생마저 내보내고 주인이 대신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혹여나 알바를 구한다는 공고가 뜨면 그 한 자리를 두고 청년이 70~80명씩 몰려드는 처절한 상황도 벌어진다.

충남의 한 대학 사진학과를 다니다 중퇴한 김모(28)씨도 작년 초부터 일하던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가 코로나를 못 견디고 9월에 문을 닫으며 일자리를 잃었다. 이후 인근 상수동의 술집에서 알바를 시작했지만, 지난달 초 ‘오후 9시 셧다운’ 조치가 내려지자 사장이 “그냥 나 혼자 해야겠다”며 김씨를 내보냈다. 이후 김씨는 알바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공항에서 수하물 옮기는 일을 하던 부모님도 코로나로 일이 끊겨 대리운전을 하고 계신다”며 “학자금 대출 상환과 교통비·식비·통신비까지 한 달에 최소 70만~80만원이 필요한데 큰일”이라고 했다.

◇아르바이트 한 자리에 80명씩 몰려

요즘 겨울 알바 구하기는 ‘로또’로 불린다. 알바 앱에 올라온 수도권의 한 브런치 카페 알바생 공고에는 4일 현재 52명이 지원한 상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음료 제조, 포장, 매장 관리를 맡기고, 월급 200만원을 주는 자리다. 경기도 부천 원미고 3학년인 서모(18)군은 “수능 치르고 2주쯤 지났을 때부터 앱으로 알바 자리를 찾아봤는데, 카페와 PC방 알바가 딱 한 자리씩밖에 없더라”며 “앱에서 지원자 경쟁률을 보니 카페는 56대1, PC방은 80대1이라 사실상 포기한 상태”라고 했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김모(51)씨는 지난달 중순 한 알바 중개 앱에 약국 전산 업무 알바를 구한다는 공고를 올리고는 깜짝 놀랐다. 휴대전화 번호를 남기고 문자로 나이와 간단한 이력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이후 2~3일간 ‘문자 폭탄’에 시달렸다. 예년 같으면 7~8명에 그쳤을 지원자가 40~50명이나 몰렸다. 문자 중에는 채용을 절박하게 호소하는 내용도 적지 않았다. ‘시켜만 주시면 뭐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누구보다 열정 넘치고 성실과 끈기를 자랑합니다.’ ‘엄마가 보건소를 하셔서 이쪽으로 빨리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연락주세요.’ ‘누구보다 꼼꼼하게 잘하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나마 사람을 뽑는 곳은 오토바이 배달원, 택배 상하차처럼 ‘코로나 특수’를 맞은 업종들뿐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최모(28)씨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경기도 이천에 있는 물류센터에서 택배 상하차 알바를 했다”며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식사는 집에서 햇반과 김치, 참치 통조림 같은 걸 먹으며 최대한 절약하고 있지만 여전히 빠듯하다”고 했다. 그는 “돈이 궁해 알바 횟수를 늘리고 싶긴 한데 그러면 공부도 해야 하는데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