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부터 24년간 광주 지역 특성화고교에 근무하며 학생들의 진로 탐색과 전문 기술 습득에 헌신했다. 11년간 대기업 기술자 재직 경험을 바탕으로 방과 후와 주말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전기 기술을 가르쳤고, 기능 동아리 학생들과 지방 기능경기대회에서 다수 입상했다.

성점용 광주공업고 교사

1996년부터 24년간 광주 지역 특성화고교에 근무하며 학생들의 진로 탐색과 전문 기술 습득에 헌신했다. 11년간 대기업 기술자 재직 경험을 바탕으로 방과 후와 주말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전기 기술을 가르쳤고, 기능 동아리 학생들과 지방 기능경기대회에서 다수 입상했다. 또 7년간 광주YMCA 청소년위원회 위원과 캠프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흡연·학업 포기 등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다. 법무부 광주보호관찰소 위원으로 위촉돼 6년간 활동하면서 범죄를 저지른 학생과 1대1 멘토 결연을 맺고 인성 지도를 하는 등 청소년 범죄 예방에도 힘썼다.

1989년 정신지체·청각장애 특수교육기관인 포항명도학교 개교 때부터 재직하며 지역 내 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장경희 포항명도학교 교사

1989년 정신지체·청각장애 특수교육기관인 포항명도학교 개교 때부터 재직하며 지역 내 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지역사회 청각장애인을 위해 수화 교육 동아리인 ‘손소리회’를 창설해 지역 내 공공기관에 수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 2012년 지적 장애 학생들로 구성된 어울림 학생오케스트라를 창설해 장애 학생 인성 교육에 힘썼고, 방학 중 계절 학교나 주말 토요 교실을 열어 장애 학생에게 다양한 활동 기회를 제공했다. 또 매주 수요일 장애 학생의 대중 교육 이용 훈련을 실시하고 취침 캠프 활동 등을 이끄는 등 자립 생활을 도왔다.

기초 학력이 부진한 학생들의 학력 향상에 헌신하며 20년 동안 공교육의 책무성 강화에 힘썼다.

오영기 부천대명초 교사

기초 학력이 부진한 학생들의 학력 향상에 헌신하며 20년 동안 공교육의 책무성 강화에 힘썼다. 한글을 깨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방학 중에도 한글 수업을 열어 열성적으로 가르쳤고, 방과 후 기초 학력 캠프 등 맞춤형 개별 학습을 통해 학생들의 기초 학력을 끌어올렸다. 도시와 멀리 떨어진 지역의 소규모 학교 등에서 근무하면서 소외된 학생들의 자존감을 키워주려 노력했고, 학부모 교육에도 관심을 갖고 책사랑 어머니회·인형극회 등 학부모회 활성화에 기여했다. 온라인 신문 만들기, 발명 교실 등 다양한 교육 활동으로 학생들의 특기 적성을 살렸다.

해마다 여름방학 때 2박 3일 동안 서울에서 진로·직업·문화체험 교실을 여는 등 10년 이상 진로·인성 교육에 매진했다.

김한수 능인중 교사

해마다 여름방학 때 2박 3일 동안 서울에서 진로·직업·문화체험 교실을 여는 등 10년 이상 진로·인성 교육에 매진했다. 코로나 사태로 생계가 어려워진 학생들을 위해 국토 종주 모금 캠페인을 벌였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인문 토론 책쓰기 동아리를 운영하며 인성 교육에 힘썼고, ‘학생·학부모·교사가 함께 만들어가는 교실’을 목표로 삼고 공동체 회의를 구성해 운영 중이다. 매년 봄 학생·학부모들과 야영 활동을 통해 가족과 교육의 참 의미를 되돌아보고, 맞벌이 가정 학생들을 위해서는 자율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