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채점 결과가 발표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영어와 한국사 1등급 비율이 급증해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계 일각에선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올해 코로나 여파로 확대된 학력 격차를 가리려고 지나치게 쉽게 출제해 사실상 ‘코로나 학력 분식(粉飾·꾸미기)’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절대평가 영어 등급별 비율

평가원에 따르면, 이번 수능 영어 영역에서 1등급을 받은 수험생 비율은 12.66%(5만3053명)로 집계됐다. 지난해 1등급 비율(7.43%)보다 5%포인트 이상 높다. 2018학년도 수능 때 영어 절대평가가 도입된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다. 영어는 90점 이상이면 1등급, 80점 이상이면 2등급을 받는 식으로 9등급 절대평가로 치러진다. 이날 박도영 평가원 수능기획분석실장은 영어 1등급이 12%가 넘어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지적에 “코로나 상황을 반영하면서 출제에 임했고, 출제·검토진이 예상했던 고난도 문제들의 어려운 정도가 예상보다 조금 더 쉽게 작용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고난도 문제로 냈는데 수험생들은 쉽게 푼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1등급 뿌리기로 불릴 만큼 비율이 급증해 정시에 지원하는 수험생들의 경우 이번 수능 영어는 실질 경쟁에서 의미가 거의 없는 과목이 됐다”고 했다.

절대평가로 치러진 한국사도 1등급 비율이 34.32%로 수험생 3명 중 1명꼴로 1등급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도 수능보다 1등급 비율이 14%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특히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설 일부를 제시하고 해당 정부가 추진한 정책을 고르라고 한 배점 3점의 문항은 보기 5개 가운데 4개를 고려와 조선 시대 사안으로 제시해 ‘바보 감별’ 평가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한편에선 오히려 코로나 학력 격차가 드러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어 1등급 비율은 크게 늘었지만, 3등급 비율은 19.7%로 전년도 3등급 비율(21.9%)보다 2.2%포인트 줄었기 때문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절대평가인 영어에서 1등급이 급증하고 3등급이 줄어든 것은 상위권과 중위권의 격차 확대를 보여주는 결과로 볼 수 있다”며 “코로나 영향으로 중위권 실력이 예년보다 약해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반면 평가원은 “이번 수능에서 중위권이 줄어드는 특이점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코로나 학력 격차를 사실상 부인했다. 재학생과 졸업생 간 격차에 대해서도 “예년보다 차이가 커진 것은 없었다”고 했다. 다만 평가원은 학력 격차가 벌어지지 않았다면서도 구체적 데이터는 제시하지 않았다. 김경범 서울대 교수는 “평가원은 코로나로 학력 격차가 확대되지 않았다는 것을 구체적 자료로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안선회 중부대 교수는 “평가원의 난이도 조절 실패는 올해 코로나가 초래한 학업 성취 저하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쉽게 출제하다 보니 벌어진 현상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