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려 일해 돈 버는 게 좋아 초등학생 때부터 신문 배달을 시작해, 중국집 배달부터 경포대 횟집 삐끼(호객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는 어려운 청소년을 위해 기부를 결심했습니다.”

지난 1월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강원도 강릉 건도리횟집 대표 신건혁(35)씨의 말이다. 지난 18일 만난 신씨는 “소띠 해인 2021년 소원은 꿈을 실현할 기회를 갖기 어려운 불우한 청소년들이 희망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신씨는 1985년생 소띠다.

“저도 고생해봤죠” - 지난 2일 강원도 강릉시 ‘건도리횟집’에서 신건혁 대표가 회가 담긴 큰 접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신 대표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 때 신문 배달을 시작해 중국집 배달부, 횟집 호객꾼 등을 하며 자금을 모아 서른 살에 지금의 횟집을 냈다. 올 1월 자신과 같이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을 돕겠다며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김지호 기자

◇초5부터 스스로 벌어, 횟집으로 성공

회사원으로 따지면 대리쯤 되는 35세 신씨의 사회생활 경력은 벌써 25년 차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96년 한 달에 15만원을 받고 신문 배달을 시작했고, 중국집 배달부와 찐빵집 아르바이트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건설 쪽 일을 하던 아버지 일이 어려워진 것도 계기가 됐지만, 푼돈이라도 스스로 버는 게 좋아서 틈나는 대로 일자리를 찾아다녔습니다. 급기야 중학교만 마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죠.”

경포대 횟집촌에서 손님을 끌어모으는 이른바 ‘삐끼’ 생활을 하다 우연히 거들게 된 횟집 주방 일을 계기로 신씨는 회칼을 잡아봤다. 처음엔 양념장을 만들다가 나중엔 광어와 우럭, 도미를 회로 뜰 수 있게 됐다. 한 달에 120만원씩 받으며 횟집 일을 하던 신씨는 지난 2010년 “일식을 제대로 배워보자”며 정통 일식집 아르바이트생 자리를 얻었다. 2012년엔 호주 캔버라의 일식집까지 취직해 일을 배웠다. 2014년 29세 때 호주서 2년간 번 돈으로 펜션에 딸린 작은 횟집을 강릉에 열었다. 그리고 모은 4억원에 대출을 더해 2015년 경포대가 훤히 내다보이는 강문동에 지금의 횟집을 차렸다. 삐끼 시절 사장과 주방 아주머니, 손님들이 불러준 ‘건도리’란 자신의 별명을 따 횟집 이름을 ‘건도리횟집’으로 지었다.

삐끼 출신이었지만 신씨는 “맛과 서비스로 승부하겠다”며 호객꾼을 쓰지 않았고, 블로그 홍보도 하지 않았다. 2016년 10월 건도리횟집을 찾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Best(최고) 횟집 in my life(내 생애) 발견. 경포대는 건도리다”라고 소셜미디어에 소개하면서 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강릉의 대표 횟집으로 자리 잡았다. 신씨를 포함해 4명이던 직원은 이제 40명이다.

◇”형편 어려운 꿈나무 돕고 싶어”

신씨는 지난 1월 한 달에 200만원가량씩 5년 안에 1억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정했다. 그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꼬막 비빔밥 맛집인 강릉의 ‘엄지네포장마차’ 김미자(54) 대표의 추천으로 아너 소사이어티를 알게 됐다고 했다. 김미자 대표는 지난해 2월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고, 남편 최근영(62)씨도 그해 4월에 회원이 됐다.

“형편이 어려운 유소년 운동선수를 돕고, 막 시작한 식당 사장님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횟집 일에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죠. ‘기부를 하면서 돈이 쓰일 곳을 알려주면 대신 진행해주는 기관이 있다’는 엄지네 사장님 소개로 기부를 결심했습니다.”

다만 신씨는 자신의 나눔 철학이 특별하지 않다고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린 2017년, 휠체어를 탄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대회) 참가 선수들을 위해 식당 입구와 화장실 계단을 모조리 목재로 막아 경사로를 설치한 것도 “그분들이 손님이니까”라고 했다.

특별하지 않은, 어려운 이웃들이 마음껏 자기 꿈을 펼치는 게 신씨의 새해 소망이다. 신씨는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땀 흘려 벌어야 한다”며 “청년 수당처럼 멀쩡한 사람한테 복지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진짜 열심히 해보고 싶어도 기회를 얻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눔이 확산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가령 형편이 어려워 역량 개발에 매진할 수 없는, 어려운 유소년 운동 꿈나무들에게 기부액이 쓰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신씨는 강릉의 11번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다. 신씨 가입 이후 4명이 더 늘어 18일 현재 강릉엔 회원이 모두 15명 있다. 전국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은 2349명으로, 신씨 같은 30대는 4.6%인 109명이다. 지난 1일 시작된 사랑의열매 연말연시 집중 모금 행사인 ‘희망 2021 나눔캠페인’으로 18일 현재 나눔 목표액(3500억원)의 34.8%인 1219억3000만원이 들어왔다. 이로써 서울 중구 서울광장 등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는 34.8도(목표액의 1%를 채울 때마다 수은주가 1도 올라감)를 기록했다.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문의 080-890-1212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협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