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30일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로 한 통의 진정서가 제출됐다. 군 법무병과 최고위 간부와 경남 사천 지역 군·검·경을 쑥대밭으로 만든 시발점이었다. 편지는 사천의 식품기업 M사 대표 정모씨가 회삿돈을 빼돌린 뒤 이 중 일부를 군납 등을 위해 뇌물로 건넸다는 내용이었다. 뇌물 수수자로 지목된 이는 이동호 전 고등군사법원장이었다.
이 제보를 바탕으로 시작된 검찰 수사에서 이 전 군사법원장뿐 아니라 최모 전 사천경찰서장, 이모 전 통영지청 수사계장, 문모 전 육군 급양대장(전 중령) 등에게도 정씨 돈이 건네진 사실이 드러났다. 제보자 측은 수사 고비마다 중요 진술을 내놓으며 수사를 도왔다. 결국 1심에서 뇌물을 준 정씨는 징역 3년, 뇌물을 받은 이 전 법원장은 징역 4년, 전 사천서장은 징역 1년형을 선고받는 등 관련자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됐다. 문 전 중령은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형 군납 비리를 제보한 장모씨는 지난해 말 한 공익재단에서 한 해 최고 공익제보자에게 수여하는 ‘호루라기상’을 받았다.
그러나 의인으로 포장됐던 제보자 장씨의 실체가 또 다른 검찰 조사가 진행되며 드러났다. 장씨는 당시 경남 진주의 한 병원 장례식장 운영권을 두고 정씨와 다투던 중이었다. 문제는 장씨 측이 검찰에 진정을 넣을 즈음, 한발 더 나아가 정씨를 협박 및 감금 혐의 등으로 고소한 사건에서 터졌다. 장씨 측 인사인 노모씨는 정씨가 현직 경찰 이모 경감과 조폭을 동원해 자신을 감금하고 협박했다고 주장하며 정씨와 이모 경감 등을 고소했다. 정씨가 장씨에게 거짓 횡령 혐의를 덮어씌우기 위해 장씨 측근인 자신을 겁박했다는 것이다. 사업가와 조폭, 경찰이 일반인을 감금하고 협박했다는 것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었다. 수사를 맡은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는 공익제보자 장씨 측 말을 받아들여 정씨와 이 경감 등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 경감은 직위해제 됐다.
이 사건을 송치받아 수사에 들어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장씨와 노씨 주장은 거짓이고 협박과 감금도 없었다며 정씨와 이 경감 등을 무혐의 처분했다. 노씨가 본 사람은 이 경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고 조폭이라던 이들도 노씨와 선물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대신 수사 과정에선 장씨 측에 불리한 정황이 쏟아졌다. 장씨 측이 정씨 회삿돈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과 장씨 측이 정씨를 수사받게 하기 위해 ‘기획 진정’을 한 정황 등이 녹취를 통해 드러났다. 장씨 측은 검찰에 진정을 넣기 전 이 전 군사법원장을 찾아가 “정씨가 횡령 고소를 취하하게 해주면 뇌물 건이 해결될 것”이라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정씨 측은 최근 장씨와 노씨 등을 무고로 고소했다. 장씨는 이 전 군사법원장 등에 뇌물을 건네는 데 정씨와 공모한 사실까지 드러나 이달 초 1심에서 1년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