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서울 서소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제2회 이종욱 기념포럼에서는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이종욱이었다면...”이라고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가 팬데믹으로 번져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WHO의 역할에 대한 실망이 크기 때문이다.

이날 발제자 중 한명인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국립보건연구원장)은 “(코로나 상황) 브리핑하면서도 몇번을 참았지만, 만약 WHO 사무총장이 이종욱이었더라면 아주 많이 달랐을 것”이라며 “이종욱의 신속성, 전문성, 조정능력, 지도력이 너무 아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종욱 WHO 사무총장이 재임중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를 방문한 코피 아난 유엔(UN) 사무총장에게 조류독감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종욱 사무총장은 1983년 기구에 들어가 2006년 사무총장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하기까지, 23년 간 WHO에서 일하면서 한센병·소아마비·결핵·에이즈 퇴치에 기여해 ‘백신의 황제’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특히 세계 각국에 백신을 공급해 소아마비가 발생하는 비율을 인구 1만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리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권준욱 원장은 “이 총장은 신종 감염병이 발생하면 24시간 내에 WHO에 알리게 ‘국제보건 규칙’을 정비했고, 신종 감염병이 발생하면 각국의 우수한 인력으로 드림팀을 꾸며 현장에 보내 대응하는 체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신종 감염병이 발생하면 WHO 관련 팀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대응하는 상황실(전략보건운영센터·SHOC)도 만들었다. 최근 WHO를 다녀온 이종구 글로벌보건안보대사(전 질병관리본부장)은 “WHO가 상황실 이름을 아예 (이종욱 총장의 약칭인) ‘JW center’로 바꾸었다”고 소개했다.

권 원장은 “이 총장은 지구상 어느 곳이든 문제가 생기면 드림팀을 파견해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환자가 100~300명 이내일 때 역학자료를 수집해 각국에 전파하고 입국을 막을지 여부를 판단하게 했는데, 이번에 WHO는 그렇게 대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WHO가 코로나 원인과 확산 경로를 파악하기위해 조사팀을 파견한 것은 첫 발병에서 한달 반 이상이 지난 2월16일이었다. 늑장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정작 바이러스 진앙인 후베이성과 우한시를 방문하지 않아 중국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조사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거브러여수스 현 WHO 사무총장은 오히려 코로나 발병 초기에 “세계가 중국에 빚을 졌다”, “시진핑의 리더십과 지도자적 역량이 감탄스럽다”는 등 편향 발언으로 국제기구 수장이 아니라 마치 중국 정부 ‘대변인’ 같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같은 WHO의 태도는 미국의 WHO 탈퇴로 이어졌다.

권 원장은 “각국이 각자도생이 벌어지도록 놔두는 것은 국제기구 역할이 아니다”며 “이종욱이 WHO 사무총장이었다면 평소 유엔 상임이사국5개국을 잘 관리하고 지도력으로 끌고 왔을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특정국가(미국)가 탈퇴하도록 놔두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것”이라며 “이 총장은 모든 나라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했는데, WHO가 특정국가(미국)와 소통했으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싶다”고 말했다.

코로나 백신 공급에서도 WHO는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 백신 공동구매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러티’에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등 겨우 87개국만 참여를 확약했고 중국은 1%만 가져가겠다고 생색만 내고 있다. 대신 선진국을 중심으로 백신 물량을 입도선매하는 선구매 경쟁이 치열하다. 이종욱 총장은 ‘3 by 5’ 캠페인으로 에이즈 퇴치사업을 벌였다. 2005년 말까지 300만 명의 에이즈 환자에게 바이러스 치료제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였다. 선진국에 집중 공급한 에이즈 치료제를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으로까지 확대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고, 국제기구, 국가만 아니라 글로벌 제약사들도 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이 19일 제2회 이종욱 기념포럼에서 이종욱 WHO 사무총장 재임 시절 감염병 대응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권 부본부장은 이종욱 총장이 임기를 시작한 직후인 2003년 9월부터 타계 직전인 2006년 3월까지 WHO 본부에서 30개월 동안 파견 근무를 했다. 그는 이종욱 총장 1주기에 맞춰 이 총장의 말과 일화를 정리한 책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를 펴내기도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이날 영상 축사에서 “일찍이 이종욱 총장은 인류에게 불어닥칠 새로운 위협으로 팬더믹을 지목하고 방역과 대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선각자”라며 “그분의 생명존중 정신이 팬데믹 시대에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 주제는 ‘포스트 코로나, 연대와 협력’이었다. 이 포럼은 이종욱 사무총장의 유지를 계승하고자 설립된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사장 추무진)이 주최하고 메디치미디어가 주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