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여권과 추미애 법무장관의 비난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11일 여권에선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 주장까지 나왔지만, 검찰 수사는 사실상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통상부는 월성 1호기에 대한 외부 기관의 경제성 평가가 진행되기도 전인 2018년 4월 ‘즉시 가동 중단’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까지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선 “청와대·산업부가 애당초 월성 1호기의 즉시 중단 결론을 정해 놓고 밀어붙였으며, 문 대통령도 사실상 이를 승인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이날 국회에 출석해 “추가 수사로 범죄가 성립할 개연성이 있다는 부분에 (감사위원) 대부분이 동의했다”고 했다.
여러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8년 4월 4일 ‘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청와대 김모 산업정책행정관에게 보냈다. 김 행정관은 이 보고서를 다시 채희봉 당시 산업정책비서관에게 보고했다. 현 한국가스공사 사장인 채 전 비서관은 감사원 조사에서 “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 보고서가 문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들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월성 1호기 가동과 폐쇄를 결정할 외부 평가 기관의 경제성 평가는 청와대가 ‘즉시 가동 중단’ 보고를 받은 지 6일 뒤에야 시작됐다. 월성 1호기의 경제성 여부와 상관없이 청와대와 산업부가 미리 ‘즉시 중단’ 방침을 정해놓고 경제성 평가 절차를 이에 꿰맞추려 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은 채 전 비서관 등 청와대 보고 라인과 함께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을 조만간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추 장관은 이날 국회에 출석해 “윤 총장이 정치적 야망을 드러낸 이후 (원전 관련 수사가) 전광석화처럼 진행 중”이라며 “정부의 민주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정치적 목적의 편파 과잉 수사”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선을 넘은 윤석열은 당장 사퇴하라”는 주장이 나왔다.
秋 “尹, 사퇴후 정치해라” 與 “탈원전 정책에 개입” 공세
검찰이 지난 5일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수사에 착수한 뒤, 더불어민주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 여권(與圈)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까지 요구하며 수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수사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인 ‘탈(脫)원전 정책’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사실상 검찰의 칼끝이 청와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 5~6일 검사·수사관 150여 명을 투입해 원전을 관리하는 산업통상자원부 등을 압수 수색한 뒤 압수물 분석과 관련자 소환 조사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월성 원전 조기 폐쇄 당시 청와대 관련 행정관들의 자택을 압수 수색하고 휴대전화도 확보했다. 곧 이번 정부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통보가 줄을 이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장 현 정부 인사들이 줄소환되고 재판이 진행되면 탈원전 정책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득세할 것”이라며 “당장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치명적이고 내후년 대선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여당은 “검찰이 손대선 안 되는 탈원전 정책에 개입했다”며 총공세를 펴고 있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이날 국회에 출석해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끌고 나가는 정책을 검찰이 수사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주권이 검찰 손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했다. 추 장관은 “윤 총장이 정치적 야망을 드러낸 이후 (관련 수사가) 전광석화처럼 진행 중”이라며 “대권 후보 1위로 등극했다. 차라리 사퇴하고 정치를 하라”고 했다. 또 “검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생명”이라며 “선거 사무를 관장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대권 후보 1위라고 하면 국민이 납득하겠느냐”고도 했다.
민주당은 감사원이 월성 1호기 관련 감사를 진행했지만 정식으로 고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검찰에 감사 자료만 보낸 점, 국민의힘이 같은 사안으로 고발장을 낸 점을 들어 이번 수사를 ‘야당 청부 수사’로 규정한 상태다. 감사원이 수사를 원하지 않았는데 국민의힘이 고발하자 정치적 목적을 가진 윤 총장이 수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추 장관은 이날 “검찰이 감사원에서 문제 삼지 않았던 청와대 비서관까지 겨냥하면서 향후 청와대도 조국 전 장관 수사 때처럼 무분별한 압수 수색을 한다면, 국민은 정권 차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소지가 있다”며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4선(選) 홍영표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감사원 고발도 없이 정부 정책 사안을 검찰이 수사한 사례는 없다”며 “정치적 저의가 없다면 성립하기 어려운 수사, 본질은 현 정부의 검찰 개혁에 대한 조직적 저항”이라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 수사는 국민의힘이 낸 고발장이 아닌 감사원이 보낸 약 7000쪽 분량의 ‘수사 참고 자료’에 기초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감사원 자료에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과 관련해 사건 개요와 관련자들의 역할, 적용 가능한 법 조항 등 사건 전체가 총망라돼 있다고 전했다. 특히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권한을 가졌던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과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의 직권남용 혐의가 수사 대상으로 명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들에 대한 수사에 나서면 탈원전 정책을 총지휘한 청와대에 대한 직접 수사가 현실화될 수 있다. 야당 법사위 관계자는 “경우에 따라서는 청와대 사람들이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검찰이 증거를 따라가며 내놓을 수사 결과가 무서워 여권이 총출동해 수사를 막으려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검찰에 제출한 감사 자료에 대해 “추가 수사로 범죄가 성립될 개연성이 있다는 부분에 (감사위원) 대부분이 동의했다”며 “수사 참고 자료를 보내는 게 감사위원회 의결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지만, 이의를 제기한 위원은 없었다”고 말했다. 감사위원회에는 현 정부에 우호적 성향의 감사위원들도 포함돼 있다. 최 원장이 범죄 혐의가 있어 검찰에 자료를 보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