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동기는.

“없다. 자꾸 범행 동기를 물어보는데 아무런 생각 없이 했다. 어떤 계획이나 생각을 갖고 한 것이 아니다. 불을 찾아가는 불나방처럼 범행을 저질렀다.”

사람을 죽이고 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그 순간에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돌아서면 끝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고 반복됐다. 강간이나 살인은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저지르다 멈추면 강간이 되고, 진행하면 살인이 된다.”

2일 오후 연쇄살인범 이춘재가 출석해 증언한 경기도 수원지법 법정 내부. 이날 이춘재의 모습은 촬영이 불허됐다. 왼쪽 휴대전화 사진은 이춘재의 과거 모습이다. /연합뉴스

15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은 너무나도 담담하게 말했다. 답변에서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2일 수원지법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화성 연쇄 살인 8차 사건’ 재심 재판정. 8차 사건 범인으로 누명을 쓰고 옥살이했던 윤모(54)씨 재심 재판에, ‘진범’ 이춘재(57)가 증인으로 나왔다. 키 170cm 정도에 청록색 수의를 입고 하얀색 운동화를 신고 마스크를 쓴 채 법정에 들어선 이춘재는 군살 없는 체격에 희끗희끗한 반백의 스포츠 머리였다. 재판 도중 잠시 마스크를 바꿔 쓸 때 드러난 얼굴은 언론에 공개된 젊은 시절 사진 속 모습 남아 있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까지 제작된 한국 현대사 최악의 연쇄 살인사건 ‘화성 연쇄 살인’(1986~1991년)의 범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평범했다. ‘악의 평범성’은 외모에서도 마찬가지인가.

이춘재는 이날 증인석에서 화성 연쇄 살인 10건뿐 아니라 미제로 남아 있던 추가 살인 사건까지 포함해 모두 14건의 살인 사건 범인이 자신이라고 순순히 자백했다. 재심 피고인 윤씨의 대리인 박준영 변호사가 “살인 14건을 자백했고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맞느냐”고 묻자 이춘재는 “맞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1994년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만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재수사에 나선 경찰이 부산교도소에 있던 그를 찾아가 심문할 때 화성 연쇄 살인 범행 10건을 포함해 14건의 살인을 추가 자백했다. 1987년 12월 수원 화서동 여고생 피살 사건, 1989년 7월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 1991년 1월과 3월 충북 청주의 여고생·부녀자 피살 사건도 모두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했다. 처제 살인까지 포함하면 모두 15명을 살해한 것이다. 경찰의 재수사 과정에서 성폭행 34건도 자백했다. 그러나 이춘재가 저지른 범행들은 2006년을 마지막으로 모두 공소시효가 끝났다. 이 때문에 이춘재는 이날 8차 사건 재심에서도 피고인이 아닌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재심을 한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2001년 화성시로 승격) 태안읍 진안리에서 중학생 박모(13)양이 성폭행당한 후 살해된 사건이다.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복역했으나 작년 이춘재의 범행 자백을 계기로 재심을 청구했다.

이춘재는 연쇄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해 “왜 그런 생활을 했는지 정확하게 답을 못하겠다. 어떤 계획이나 생각을 갖고 한 것이 아니라 불을 찾아가는 불나방처럼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와 유가족이 겪을 고통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특별한 기준이나 계획 없이 그날 마주친 대상에 대해 순간적인 생각으로 범행했다”고 했다. 교도소에서 영화 ‘살인의 추억’을 봤지만 “그냥 영화로만 봤고 특별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고 했다. 죄의식도, 감정도 제거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제가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형 생활을 한 윤씨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며 “저로 인해 죽은 피해자들의 영면을 빌며, 유가족과 사건 관련자 모두에게 사죄드린다”고 했다. 15명을 살해하고 공소시효가 끝난 뒤에야 자백한 사악한 연쇄 살인범의 공허한 사죄였다.

박준영 변호사가 물었다. “작년 9월 재수사에 나선 경찰이 교도소에 접견을 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