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에 있는 20평짜리 카페 사장 정모(35)씨는 지난 14일 하루에만 수기(手記) 개인 명부 때문에 세 차례 항의를 받았다. 한 중년 남성이 점심때 혼자 와서 “1단계로 내려갔는데도 왜 명부를 써야 하느냐”며 “휴대전화 번호를 팔아넘기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승강이 끝에 “정부 방침이라 어쩔 수 없다”고 명부 작성을 계속 요구하자, 그 남성은 기분이 나빴는지 결국 가게를 나가버렸다. 다른 두 번의 사례도 “마스크를 잘 쓰고 있을 테니 (명부를) 안 적겠다”고 하는 손님이었다. 정씨는 “2.5단계 때만 해도 손님과 마찰이 있더라도 방역에 협조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는데, 언제까지 이 문제로 손님과 싸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사회적 거리 두기가 50일 만에 1단계로 내려가면서 유흥 클럽, 노래방 등이 문을 여는 등 제한 조치가 잇따라 풀렸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8월 30일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조치’와 함께 시작한 명부 작성과 QR 코드 등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가게 주인들은 1단계로 하향됐는데도 명부 작성을 요구하는 문제로 손님들과 다툼이 벌어지자 피로감을 호소한다. 식당·카페·술집 이용자들도 정부의 개인 정보 수집이 너무 무차별적이고 과도하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백모(62)씨는 최근 사흘 사이 상조 회사의 대출 상담 등 광고 전화를 10통가량 받았다. 같은 휴대전화 번호를 3년 동안 쓰고 있는데, 요즘처럼 광고 전화를 많이 받은 적은 없었다. 백씨는 “광고 전화는 출입 명부 작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QR 코드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개인 명부를 작성했는데 전화번호가 새어 나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확진자가 많이 나왔을 때는 이해했지만 1단계로 내려온 지금도 왜 계속하는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에볼라, 메르스 사태 때 국내외에서 “국가의 개인 정보 관리는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6년 펴낸 보고서 ‘감염성 질병 발생 시 윤리적 문제 관리를 위한 지침’에는 “감염병 발생 시 수집한 개인 정보를 무단으로 공개하면 개인이 중대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며 “국가는 정보를 처음 수집한 목적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공개할 수 있는 상황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우리 정부가 2015년 펴낸 ‘메르스 백서’에도 “(감염병) 관리 시 필요한 개인 정보 제공 등은 국민의 인권 및 자유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며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하더라도 가능한 한 최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에서 이런 지침과 권고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1단계로 하향했지만 여전히 각 매장에서 이용자들의 개인 정보를 등록하도록 요구한다. 그렇게 수집한 개인 정보 관리 책임은 해당 가게 주인에게만 맡겨두고 있다. 개인 정보 관리를 부실하게 했을 경우 과태료 부과와 형사처벌까지 하도록 했지만, 현실은 관리 상태가 엉망인 곳이 많다. 가게 입구 카운터 등에 수기 명부가 덩그러니 노출돼 있는 곳도 수두룩하다.
최근 코로나 감염 경로를 고려하면 가게에서 개인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코로나 감염 사례는 요양원이나 재활병원 등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접촉하는 시설에서 집중적으로 나오고 있다. 경기 광주시의 ‘SRC 재활 병원’, 경기 남양주 ‘행복해요양원’, 부산 ‘해뜨락요양병원’ 등에서 49~132명씩 집단감염이 발생한 것이다. 개별 식당이나 술집, 카페를 통한 감염 사례는 드물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역사회에 코로나 감염이 이미 만연해 있고 감염 경로가 불투명한 사례가 많은 상황에서, 개별 가게에서 명부를 작성하게 하는 정책의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 방역 조치가 요식 행위에 그치지 않으려면 명부 작성의 성과를 재검토하고 개인 정보 침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