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3일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등 광화문역 일대를 온종일 점령하고, 일반 시민 통행을 원천 봉쇄했다. 경찰 인력 1만1000여 명이 도심 일대에서 불심검문을 벌였다. 경찰 버스 300여 대를 동원한 총연장 4㎞짜리 차벽(車壁)이 일대 도로와 인도 사이를 차단했다. 정부 규탄 시위를 막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서울시 경계와 한강 다리, 도심에서 시위대 진입을 차단하기 위한 ‘3중 검문’을 시행했다. 서울 시내 진입로 90곳에 검문소가 설치됐다. 태극기 등을 실은 차량은 통행을 금지당했다. 인도 위에도 철제 바리케이드를 세워 시민 통행을 막았다. 도심 내 직장 근무자임을 증명하지 못하면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 대법원은 2007년 농민집회 당시 이와 비슷한 방식의 ‘원천 봉쇄’ 행위에 대해 위법이라고 판결한 적이 있다.

경찰들이 3일 오전 서울 한남대교 북단 인근에서 개천절 집회와 관련해 임시 검문소를 설치하고 관광버스 및 집회참석 의심차량을 검문검색 하고 있다./뉴시스
개천절인 3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 부근 도로에서 경찰이 돌발적인 집회·시위 등을 차단하기 위해 광화문광장 방향으로 향하는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연합뉴스

당초 자유연대 등 9개 단체는 이날 광화문광장과 시청 일대 18곳에서 10만3000여 명 규모의 집회를 열겠다고 지난달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이 방역(防疫)을 명분으로

불허하자, 집회를 대부분 취소 또는 ‘기자회견’으로 축소했다. 일부 집회는 ‘차량 집회’로 전환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상대로도 금지 통고를 했다. 지난 7월 차량 2500대가 동원된 이석기 석방 요구 차량 집회는 허용했지만, ’200대 참가'를 신고한 이번 정부 규탄 차량 집회는 불허한 것이다. 차량이 플래카드 등을 내걸고 줄지어 운행하는 것만으로도 코로나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대공원은 추석 연휴(9월 30일~10월 2일) 내내 문을 열었다. 서울대공원 주차장 진입로에는 4열 종대의 수십m 규모 차량 대기 행렬이 만들어졌다. 하루 평균 약 2만명이 동물원과 놀이공원을 방문했다.

경찰버스 300대로 만든 4㎞ 차벽 - 3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를 경찰 버스 300여 대가 둘러싸고 차벽을 만들어 시민들이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출입을 막고 있다. 이날 경찰은 서울시 경계와 한강 다리, 도심에서 시위대의 시내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3중 검문을 벌였다. 시내 진입로 90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도심 진입 차량을 점검했으며, 광화문 골목 곳곳에서 오가는 시민에게 방문 목적을 물었다. /뉴시스

“어디로 가십니까.”

3일 오후 3시 30분쯤 서울 시청역 7번 출구 앞 인도를 지키고 서 있던 경찰관이 행인의 길을 막아서며 말했다. 행인이 “광화문 앞 회사에 당직 근무 서러 간다"고 말했지만, 경찰관은 기어이 사원증을 확인하고서야 그를 통과시켰다. 그 행인은 광화문역까지 약 600m를 가는 동안 이런 식의 불심검문을 6번 당했다. 일부 경찰관은 행인이 말한 목적지까지 동행하기도 했다. “광장에 산책 나왔다”고 답한 행인에게는 경찰관은 “우회하셔야 한다”며 돌려세웠다.

불심검문은 차도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오전 10시쯤 서울 충정로역 앞 차도에서 경찰이 지나가는 차량을 세우고 손짓으로 창문을 내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는 차 안에 시위용품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광화문역을 향하는 모든 주요 도로가 똑같았다. 오전 11시쯤 독립문 인근에서는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차량 안에 태극기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광장 에워싼 경찰 버스 - 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경찰 버스가 빙 둘러 에워싸고 있다. 이날 경찰 버스 300대가 동원돼 광화문광장 주변을 완전히 봉쇄했다. 일부 시민은“독재시대에 모든 집회를 봉쇄하던 시절에나 볼 만한 광경”“중국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재인장성”이라고 비판했다. /장련성 기자
경찰의 개천절 집회 차량 ‘3중 차단선’

경찰관은 직무집행법 제3조에 따라 불심검문을 진행할 때 ‘흉기의 소지 여부’를 조사할 수 있지만, ‘태극기’를 조사할 수 있게 한 조항은 없다. 경찰 측은 “위험 발생 방지 차원에서 적법하게 이루어진 일”이라는 입장이다. 전문가들 말은 다르다. 이창현 한국외대 교수(형사소송법 전문)는 “‘흉기’가 아닌 소지품을 당사자 사전 동의 없이 확인하는 것은 명백하게 위법”이라고 했다. 현 정부 우군(友軍)으로 통하는 민변도 지난달 29일 “차량집회 그 자체를 범죄로 간주하고 참여자에게 불이익을 부과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상당하다”고 밝혔다.

시내 곳곳에서 시민들이 경찰과 마찰을 빚었다. 오전 11시 25분쯤 광화문우체국 인근 보도에서는 한 50대 남성이 경찰을 향해 “광화문이 네 거냐”고 따졌다. 그는 “80년대 군부 독재 시절 거리에 나온 기분”이라고 투덜댔다.

경찰들이 3일 오전 서울 한남대교 북단 인근에서 개천절 집회와 관련해 임시 검문소를 설치하고 관광버스 및 집회참석 의심차량을 검문검색 하고 있다. /뉴시스

시민들 혼란도 이어졌다. 오전 10시쯤 종각역 인근의 안과 병원을 찾은 조희정(43)씨는 진료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려고 광화문역 7번 출구로 향했지만, 경찰에게 제지당했다. 조씨는 “다른 안과는 문을 닫아서 겨우 문을 연 안과를 찾아 택시를 타고 왔는데, 지하철까지 통제하는 줄 몰랐다”며 “오늘 집회를 모두 금지시켰다고 해서 통행이 자유로운 줄 알았다”고 했다.

지하철은 이날 오전부터 광화문역과 시청역, 경복궁역을 무정차 통과했다. 이를 몰랐던 시민들이 역에서 헤매기도 했다. 이날 오전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려던 조모(28)씨는 목적지인 광화문역을 사이에 두고 종로3가역과 서대문역에서 내리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처음엔 스마트폰을 보느라 깜빡 광화문역을 지나친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다 플랫폼에서 ‘오늘 광화문역에는 정차하지 않는다’는 안내 방송을 귀 기울여 듣고서야 열차가 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씨는 “열차 내 ‘이번 역은 광화문역’이라는 안내 방송은 그대로 나왔기 때문에, 깜빡 속았다”고 했다.

개천절인 3일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 셔터가 내려진 채 무정차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이날 도심 집회 이동 및 광화문 광장 일대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지하철은 오전 9시 10분께부터 5호선 광화문역을, 9시 30분께부턴 1·2호선 시청역과 3호선 경복궁역을 무정차 통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집회는 예정된 시각에, 그러나 ‘기자회견’으로 이름을 바꿔 소소하게 진행됐다. 오후 1시 30분 광화문역 1번 출구 앞에서는 6명이 모여 ‘문재인은 하야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을 경찰 50명이 에워쌌다. 참가자들은 30분간 기자회견을 마치고 “문재인 대통령은 즉각 하야하라!”는 구호를 외치다가 해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