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전 11시 20분쯤 화재로 연기가 가득한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의 한 빌라 2층 집에 들어선 소방대원들은 안방에서 쓰러져 있는 형제를 발견했다. 한 아이는 침대 위에 엎드려 있었고, 다른 아이는 책상 아래에 웅크리고 있었다. 책상 아래에는 누군가 아이를 불길에서 막아주려 한 듯 이불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었다.
두 아이는 발견 당시 의식이 없었다. 침대 위에서 발견된 형 A(10)군은 상반신에 3도 중화상을 입는 등 전신의 40%에 화상을 입었다. 그러나 책상 아래에서 이불로 막혀 있었던 동생 B(8)군은 다리에 1도 화상을 입는 데 그쳤다. 형제를 가장 먼저 발견한 소방대원은 “형이 마지막 순간까지 동생을 구하려고 책상 아래로 동생을 밀어넣고 이불로 주변을 감싸 방어벽을 친 것 같다"고 말했다. 열 살 형은 여덟 살 동생을 끝까지 지키려 한 것이다. 형제는 화재 사흘째인 17일까지 의식불명 상태다. 초등학교 4학년인 형은 화상이 심해서, 동생은 화상 정도가 심하진 않지만 연기를 많이 마셔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초등학생 형제는 지난 14일 오전 11시 10분쯤 엄마가 없는 집에서 끼니를 때우려 라면을 끓이다 실수로 불을 냈다. 이날 오전 119 신고센터에 “살려주세요! 여기는… 켁켁”이라는 신고가 접수됐다. 주소도 미처 다 부르지 못하고 전화가 끊길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다. 출동한 소방대는 10여분 만에 불을 껐으나 두 아이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두 형제는 2년 전부터 수차례 경고가 있었지만 엄마와 아동보호 안전망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형 A군은 2018년 5월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동을 돕는 미추홀구 드림스타트 사업 부서 소속 아동 관리사는 17일 “A군 형제는 유치원을 다니지 못했으며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돌봄교실을 단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며 "또래와 사귀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등 사회성 발달에 문제가 있다는 소견을 학교 측에서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형제가 돌봄교실 등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것은 어머니 C(30)씨가 “아이들을 내가 돌보겠다”고 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드림스타트 측은 2018년 8월부터 2019년 5월까지 A군 형제에 대한 심리 상담과 놀이 치료를 진행했다. 드림스타트 측은 “형제에게서 우울감이 뚜렷해 심리 상담 치료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어머니 C씨는 형제를 아동센터에 보내자는 드림스타트 측의 권유를 거부했다. 가정 보육을 고집하면서 나중엔 연락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구청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드림스타트 사업이 강제성이 없다 보니 부모가 원하지 않으면 지원할 방법이 없다"며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원격수업 기간에도 돌봄교실은 운영됐지만, C씨는 한 번도 신청하지 않았다. 인천시 교육청 이상훈 대변인은 “신청하지 않더라도 학교만 보내주면 돌봄교실을 이용할 수 있는데 학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학교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망은 무력했다. 형제가 엄마에게서 학대받은 정황이 뚜렷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경찰과 인천시 등에 따르면 주민들은 2018년부터 올해까지 세 차례 어머니 C씨를 인천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아동학대 및 방임 혐의로 신고했다. 2년 전인 2018년 9월 16일 첫 신고가 접수됐고, 인천시 아동보호 전문 기관은 집안 청소 등 환경을 개선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작년 9월 24일 두 번째 신고에 이어 지난 5월 12일 세 번째 신고가 접수됐다.
아동보호 전문 기관은 C씨가 아이들을 상대로 손찌검 등 폭력을 행사한 의심 정황이 있고 아이들만 놔두고 집을 비우는 사례가 종종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방임 학대 건으로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 5월 29일엔 인천가정법원에 어머니와 형제를 격리해 보호하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청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달 27일 격리보다는 심리 상담이 바람직하다며 상담 위탁 보호 처분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C씨는 1주일에 한 차례 6개월간 전문 기관 상담을 받고, A군 형제는 12개월간 상담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아직까지 첫 상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은 엄마 C씨가 A군 형제를 방임 학대한 혐의가 있다고 보고 지난달 말 C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어머니 C씨는 화재 당일인 지난 14일 소방 당국 조사에서 “전날 외출해 지인의 집에서 머물렀다”고 주장했다. 형제는 서울 한 병원의 화상 중환자실에 있다. C씨는 17일 늦은 저녁까지도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 오후 C씨의 남동생만 형제를 면회하러 들렀다. C씨의 남동생은 “누나가 충격이 심해 대화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누나가 아이들을 나 몰라라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A군 형제에 대한 후원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후원을 주관하는 사단법인 학산나눔재단 등에 따르면 사건이 알려진 16일 오후부터 형제에 대한 기부 문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재단 측은 기부자가 기부금의 용도를 지정해 기탁할 수 있는 ‘지정 기탁’을 A군 형제를 대신해 받을 예정이다.
형제가 거주하는 용현동 행정복지센터와 미추홀소방서에도 아이들을 도울 방법이 있는지를 문의하는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엄마에 대한 기사가 나간 뒤 뜸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또 인천소방본부도 A군 형제에게 ’119원의 기적’ 성금으로 치료비 5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