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 가는 걸 반기는 보호자도 있고, 반대로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보호자도 있습니다. 보호자가 왕진을 꺼리는 건 대개 자신의 속내를 보여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바쁘신데 미안하게….”
연락했을 때 이렇게 얼버무리면 저는 언제쯤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잡은 다음, 출발한 뒤에 전화합니다. 말릴 틈을 안 주기 위한 저만의 비결입니다.
의사는 생면부지의 남입니다. 진료비 청구서에 왕진료가 청구되는 것도 아니고 기름값이 청구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의사가 왕진을 온다면, ‘가족인 우리가 환자를 잘 보살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왕진을 가면 환자가 어떻게 투병하는지 한눈에 파악됩니다. 집안의 분위기에 따라 환자의 투병을 적극적으로 또는 마지못해서 돕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저는 동부 이촌동으로 왕진을 가다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며 겨울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늘 다니는 곳이 아니다 보니, 일방통행 길을 잘못 들어 한강변을 하염없이 달리게 됐습니다. 겨우 물어물어 찾아간 환자의 집은 한눈에 봐도 냉기가 돌았습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아, 이분은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집은 컴컴하고 냉기가 감돌았습니다.
암 환자가 있다면 집안이 환하고 실내온도도 조금 높여 따끈따끈하고 생기 있는 푸른 식물이 집 안 구석구석 있는 게 좋습니다. 식물은 공기를 정화하고 녹색은 시각적으로 환자를 편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그 환자의 집에는 흔한 화분 하나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내 되는 분은 그만 포기했으면 하는 눈치가 역력하기도 했습니다. 환자 역시 반쯤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이것저것 해도 안 되는데, 어떡합니다? 암이 낫는 병이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두려워하겠습니까?”
환자의 아내는 끊임없이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된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조금씩 해보고는 다 그만둔다, 죽도록 고생시키더니 마지막까지 나를 이렇게 고생시킨다, 이제 나도 포기했다…. 사이가 벌어진 부부 사이에 앉아 있으니 바늘방석이 따로 없었습니다.
“한번 끝까지 노력해 보시고, 마음의 평안을 가지세요.” 환자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나왔지만, 제 말이 얼마나 가슴에 닿았을지는 의문이었습니다.
이처럼 환자에게 투병 의지가 있는데 보호자에게 전혀 의지가 없는 경우는 의사로서 참 안타깝습니다. 그것이 환자의 죽음을 재촉하는 행동이라는 걸 아마 그 보호자는 모를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환자는 2주쯤 뒤에 치료를 그만뒀습니다. 예약한 날에 오지 않아 전화해 보니 보호자가 치료를 포기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가족 중에 암 환자가 생기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투병 의지가 있는 경우
환자는 투병 의지가 있는데 보호자 없는 경우
환자는 투병 의지가 없지만 보호자가 있는 경우
환자와 보호자 모두 투병 의지가 없는 경우
가장 다행스러운 경우는 환자와 보호자 모두 투병 의지가 있는 경우이고, 만약 환자에게 투병 의지가 없는데 보호자가 있는 경우에는 의사로서 고맙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 중에서 가장 딱한 경우는 환자에게 투병 의지가 있는데 보호자 없는 경우입니다. 이런 상황이면 보호자에 의해 환자의 투병 의지가 언젠가는 꺾이고 마는 걸 자주 봤습니다.
물론 보호자의 마음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가끔은 극성맞은 환자들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치료를 다 받아 보고 싶어 하고, 집 한 채 값을 날리더라도 몸에 좋다는 건 다 구해다 먹으려 하기도 합니다. 그 바람에 가족들이 경제적인 고통을 겪더라도 안중에도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한 번 치료를 시작했으면 끝까지 인내를 가지고 해야 하는데, 귀가 얇아서 치료 방법을 이리저리 바꾸는 환자도 있습니다. 이렇게 환자가 갈피를 잡지 못해 변덕을 부리면 보호자는 서서히 지쳐 가게 됩니다.
그렇다고 환자 때문에 온갖 고통을 당했던 보호자는 과연 환자가 죽고 없어지면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환자가 평생 속만 썩이다 마지막까지 들들 볶으면 보호자도 기가 찰 노릇이겠지만 그래도 모든 걸 용서하는 게 좋습니다. 환자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남겨질 보호자를 위해서 필요한 조치입니다.
자유는 최선을 다한 다음, 또한 사랑을 다 한 다음에야 얻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그 환자 부부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저는 익히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구불구불한 강변로를 따라 돌아오는 길에 저는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니 조금은 편해졌지만, 마음의 평화까지는 좀처럼 되찾기 어려웠습니다. 환자의 뒷모습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늘에 맡겨야 합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사랑하세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