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 69세 김모 씨는 외출을 하려고 와이셔츠 단추를 매려는데, 오른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제 술을 좀 많이 마셨나…” 하고 넘기려 했으나 이번에는 말이 꼬였다. 아내가 놀라 “왜 그래?”라고 묻자, 대답을 하려는데 혀가 굳은 것처럼 제대로 발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결국 병원으로 실려 갔고, 진단은 뇌경색이었다. 김 씨의 병력에는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있었다. 약은 먹고 있었지만 꾸준하지 않았고,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의 혈관은 이미 ‘노년의 병’ 단계로 들어가 있었다.
동맥경화 관련 질병이 심장에서 뇌로 옮겨가고 있다. 2024년 뇌경색 환자는 53만7000여 명, 심근경색 환자는 14만2000여 명이다. 뇌경색이 4배 가까이 많다. 한때 한국에서 ‘혈관질환’ 하면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심근경색이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그러나 지금 병원 현장에서 더 많이 보는 것은 한쪽 팔다리가 마비되거나, 말이 어눌해지는 뇌경색 환자들이다. 질병의 중심축이 중장년 심근경색에서 노년의 뇌경색’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뇌경색 시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첫 번째 이유는 고령화다. 나이가 들수록 혈관은 탄력을 잃고 딱딱해진다. 특히 뇌혈관은 아주 가늘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 노화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혈관이 좁아지고, 미세한 혈전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막혀버린다.
두 번째는 만성질환의 누적이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은 당장 증상을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가볍게 생각한다. 하지만 만성질환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의 병을 만든다. 매일 조금씩 혈관을 손상시키고, 혈관 내벽이 거칠어지고, 지방이 쌓인다. 이 과정이 10년, 20년 이어지면 결국 혈관이 막히는 날이 온다.
박승성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심근경색은 죽상동맥경화를 일으키는 LDL 콜레스테롤 수치에 영향을 크게 받는데, 최근에는 이를 낮추는 약물들의 효과가 좋아서 중증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줄고 있다”며 “스텐트 시술과 약물 치료가 발달해 심근경색증 생존율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노화 질환 심방세동의 증가도 뇌경색을 늘린다. 좌심방 리듬이 불규칙해지는 심방세동이 있으면 심장 안에서 혈전이 만들어지기 쉽다. 이 혈전이 혈류를 타고 올라가 뇌혈관을 막으면 뇌경색이 된다.
이제 심장 살리는 시대에서 뇌를 지키는 시대로 가야 한다. 고혈압, 당뇨병, 콜레스테롤이 높은 사람, 심방세동이나 부정맥이 있는 사람, 흡연, 복부비만, 운동 부족, 과음 등 여러 조합이 모이면 뇌경색은 ‘언젠가 생기고 마는 병’이 된다.
뇌경색 예방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혈압 관리다. 혈압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그래픽 참조>. 나이 들어 심방세동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맥박이 불규칙하거나 두근거림이 있다면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 담배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 운동은 가장 강력한 예방약이다. 짜게 먹는 습관은 혈압을 올리고, 기름진 음식은 혈관을 막는다. 은 음주와 과음은 혈압과 중성지방을 동시에 올린다.
김치형 고대구로병원 신경과 교수는 “만성질환 관리 실패 결과는 뒤늦게 뇌로 나타나고, 20년 전의 나쁜 생활습관이 현재의 뇌경색을 만든다”며 “크고 작은 뇌경색이 나중에 인지기능 저하나 치매로 이어지기에 젊은 시기부터 만성질환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뇌경색은 시간이 생명이다. 한쪽 팔이나 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얼굴이 한쪽으로 처지거나,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이 나타나면, 뇌경색 발생으로 보고 119를 불러 즉시 병원으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