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한강변을 걸었다. 바람이 조금 불었고,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단 한 번의 멈춤 없이, 윗물이 아랫물을 밀어내며 그저 지나가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지금 잘나가는 것도, 지금 힘든 것도, 이 물결처럼 결국은 흘러가 버리는 한 장면일 뿐 아닐까.
얼마 전 젊은 사람들 모임에서 만난 한 사람이 떠올랐다. 자기 의견이 분명했고, 거침이 없었다. 무엇이든 빠르게 판단하고 곧장 말로 꺼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거슬릴 수 있다. 실제로 대화는 몇 번 어색해지기도 했다.
그 자리에 또 다른 유형의 사람도 있었다. 말없이 듣고,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사람. 누구와도 충돌이 없고 편안하다. 겉으로 보면 훨씬 무난해 보인다.
그런데 자리를 나오면서 이상하게 이런 생각이 남았다. 과연 누가 더 멀리 갈까.
자기 의견을 강하게 드러내는 사람은 분명 부딪힐 일이 많다. 하지만 바로 그 부딪힘 속에서 지적을 받고, 돌아보고, 다시 조정하면서 변해갈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반면 늘 무난한 사람은 큰 충돌 없이 지나가지만, 그만큼 자신을 돌아보거나, 밀어붙일 기회도 적을 수 있다.
비슷한 생각은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통해 만난 한 아이를 보며 더 분명해졌다. 초등학교 4학년 민우(가명)는 평소에는 머리도 좋고 예의도 바르지만, 감정이 틀어지면 그대로 터뜨렸다. 보육원에서 감당이 어려워 결국 더 전문적인 보호가 필요한 곳으로 옮겨졌다.
그 아이의 근황이 궁금해 몇 달 뒤 찾아가보니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미술치료를 통해 감정을 그림으로 풀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그때 담당 교사가 했던 말이 오래 남았다.“차라리 저 아이처럼 안에 있는 게 밖으로 나오는 게 낫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알고 도울 수 있고, 본인도 인식하게 되니까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조금 안심이 됐다.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문제일 수 있지만, 동시에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는 것을.
돌아보면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다.어릴 때 병약하거나 왜소했던 사람이,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강해져 결국 최고의 운동선수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기자 시절 만난 사람들 가운데도 지금의 강점이 나중에는 약점이 되기도 하고, 지금의 결핍이 다음 단계로 가는 힘이 되는 사례도 무수히 접했다.
그래서 요즘은 잘될 때도 조금 조심하게 되고, 힘들 때도 예전처럼 쉽게 낙담하지 않게 된다. 지금의 모습이 그대로 굳어질 것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울퉁불퉁한 모습이라도,
지금 부족해 보이더라도,그 안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다면 그것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의 모양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느냐일지도 모른다.
다시 한강을 바라봤다.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조금 전의 물결은 이미 사라졌고,또 다른 흐름이 그 자리를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