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에 사는 68세 김모 씨는 새벽 5시,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다 깜짝 놀랐다. 천장이 갑자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순간 중심을 잃고 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술도 안 마셨는데 왜 이러지?” 잠시 누워 있으니 어지럼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다시 몸을 일으키자, 또 세상이 돌았다. 그날 김씨는 결국 병원을 찾았다. 진단은 이석증이었다.
이석증(의학명 양성 발작성 체위성 현훈)은 더 이상 낯선 질환이 아니다. 주변에서 이석증으로 고생했다는 얘기를 흔히 듣는다. 이석증 환자는 2014년 30만5000여 명이던 것이, 2024년에는 49만4000여 명으로 늘었다. 10년 새 62% 증가했다. 고령 인구 증가 탓으로, 이석증은 60~70대에서 많이 발생한다. 특히 폐경 이후 여성에게 많다.
이석증은 뇌 질환이 아니고, 귀 문제다. 귀 안에는 균형을 잡는 전정기관이 있는데, 그 안에는 ‘이석(otolith)’이라는 미세한 칼슘 결정체가 붙어 있다. 이 이석이 중력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석이 떨어져 나와 반고리관으로 들어가 굴러다니면 문제가 시작된다.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불필요한 자극이 발생하는데, 뇌는 이를 ‘몸이 회전한다’고 착각한다. 그 결과가 세상이 도는 어지럼증이다. 이석은 나이가 들수록 잘 부서지는 구조로 변한다. 이석을 붙잡고 있는 접착제 역할의 젤 구조물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폐경 이후 호르몬 변화나 비타민 D 부족은 이런 현상을 부추긴다.
이석증 어지럼은 고유의 특징이 있다. 증상만으로도 구별이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세를 바꿀 때만 어지럽다. 누웠다가 일어날 때, 침대에서 돌아누울 때 등이다.
배성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이석증 어지럼은 몇 초~수분 내로 짧고 강한 반면, 메니에르병에 의한 어지럼은 20분에서 수시간 지속되고, 전정신경염 어지럼은 하루 이상 지속된다”며 “어지럼 시간이 짧고, 자세와 관련됐다면, 이석증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석증이 처음 발생했을 때는 공포스럽고 당황스럽지만, 잘 대처하면 쉽게 나을 수 있는 병이다. 어지럼이 시작됐으면, 움직이지 말고 즉시 앉거나 눕는다. 고개를 흔들지 않고 머리를 고정한 채로 1~2분 기다리면 어지럼이 확연히 준다. 이날은 운전이나 계단 이용을 삼가야 한다.
증세가 다소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비인후과를 찾아가 이석의 위치를 파악하는 안진검사를 받아야 한다. 탈출된 이석 방향으로 눈동자가 움직이는 데, 그걸 보고 탈출 이석 방향을 알 수 있다.
치료의 핵심은 이석정복술이다. 머리를 특정 순서로 움직여 이석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치료다. 15분 내외 걸리고, 1회 치료로 70~90% 호전된다. 전문가의 판단과 지도로 이석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한 번의 정복술로 이석을 정확히 되돌리는 것이 중요하다.
장정훈 하나이비인후과병원 원장은 “탈출된 이석은 대부분 2~4주 내 녹거나 사라지면서 증세는 자연 호전되지만, 치료하면 훨씬 빨리 낫고, 일상생활 불편을 줄일 수 있다”며 “1년 내 재발률이 10~30%에 이르니 재발 방지 생활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낮은 베개는 이석 이동 위험을 증가시키니, 베개를 높게 사용하면 좋다. 비타민 D 보충도 권장된다. 급격하게 머리를 움직이거나, 너무 오래 누워 있는 것도 발생 위험을 높인다.
배성훈 교수는 “이석증은 진단도 쉽고 치료도 빠른 질환이니 어지럽다고 너무 겁먹지 말고, 이석증 특징적인 증상을 알아두고 그에 따른 올바른 행동 수칙을 하면 이석증이 주는 갑작스러운 삶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