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없이 찾아오는 생각과 자극 속에 살고 있다. ‘생각을 좀 줄일 수 있다면…’, ‘이런 자극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면…’ 바라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늘 복잡하고 과열된 머리로 살아간다.
내게는 머리를 식히고 청소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명상이다. 십여 년 전 정신적으로 힘들 때 배운 것이지만, 이른바 궁즉통(窮則通)이라는 말처럼 예상보다 큰 도움이 됐다.
지금도 매일 아침 30분 이상 명상을 하고, 낮에도 버스를 타거나 잠깐 시간이 생기면 몇 분씩 호흡에 집중한다.
사람들은 피로할 때 에너지 음료를 찾지만, 내게는 명상이 그런 역할을 한다. 하고 나면 에너지 소모가 줄어들어 일종의 절전(節電) 상태가 되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그 빈 공간에 다시 활력이 채워진다.
쉽게 말하면 청소기와 비슷하다.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명상은 머릿속에 쌓인 잡념을 빨아들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준다.
물론 명상을 한다고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십 년 가까이 해 왔지만 여전히 잡념은 올라온다. 잘 되는 날에도 20~30% 정도는 남아 있다. 어느 순간 다른 생각에 빠져들기도 하고, 감정이 겹쳐 올라오기도 한다.
그래서 한 번은 명상에 능한 스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명상을 오래 하면 생각이 완전히 없어지나요?”
스님은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 정도면 아주 잘하고 있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조금 이해가 됐다. 명상의 목표는 생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보통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곧 자기 자신이라고 여긴다. 불안한 생각이 들면 내가 불안한 사람이 되고, 우울한 감정이 올라오면 그것이 곧 나의 상태가 된다.
그러나 명상을 하다 보면 그것이 조금 달리 보인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고 감정은 감정일 뿐이다. 잠시 올라왔다가 지나가는 파동일 뿐이다. 나는 그 파동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 주사를 맞으러 갔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사실은 엉덩이 한 부분이 잠깐 따끔한 것인데, 우리는 온몸이 아픈 것처럼 울고 난리를 친다. 고통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 버린다.
생각과 감정도 비슷하다. 우리는 순간적인 불편함을 삶 전체의 문제처럼 확대한다. 그래서 더 힘들어진다.
명상은 그 사이에 거리를 조금 만들어 준다. 불편한 생각이 올라오면 바로 분석하거나 싸우지 않는다. 호흡을 하며 잠시 바라보다 보면 그 생각은 점차 가벼워지고 대개 스르르 지나간다. 에너지가 절약되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이렇게 말했다.
“Between stimulus and response there is a space.”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하나의 공간이 있다.)
명상은 바로 그 공간을 넓혀 주는 훈련이다. 생각과 나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자신의 생각을 바라보는 능력을 심리학에서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익숙한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울이나 불안조차도 어느 순간 자신과 동일시한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강연에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여러분의 고통과 부정적인 생각을 완전히 없애 줄 약이 있다면 드시겠습니까?”
의외로 손을 드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그런 약이 있겠어?”“내 고통은 내가 아는데 그게 쉽게 없어질 리 있나.”
사람은 이렇게 익숙한 생각과 감정 속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결국 성격이 되고, 때로는 운명처럼 굳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에서 한 발짝 떨어지는 순간 조금 다른 일이 일어난다. 머리는 맑아지고 에너지는 돌아온다. 삶의 생기도 그때 다시 살아난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다. 훈련이 필요하다. 물리학에서 우주선이 지구 중력을 벗어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듯이.
우리의 마음도 비슷하다. 오래 반복된 생각과 감정에는 심리적 관성이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주 작은 거리에서 시작한다. 지금 나를 붙잡고 있는 생각에서 단 몇 초만 떨어져 보는 것.
그 짧은 순간이 쌓이고 쌓이면 익숙한 생각의 궤도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 이르면 그 익숙한 생각의 중력에서 벗어나 무한한 우주로 여행할 수도 있을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