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종교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인생과 종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좌장격인 한 종교인은 무척 활달한 분이었다. 말도 거침없고 판단도 분명했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아니다’ ‘ 그 사람 별거 아니다’
그 분의 말은 시원했지만, 내게는 좀 달리 들렸다.
종교 모임에서는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다. 신도들은 대개 지도자의 판단에 동조하거나 조용히 듣는다.
하지만 나는 신도도 아니고 그 공동체의 내부 사람도 아니다. 저렇게 판단이 빠르게 이어지면다른 사람들이 표현을 주저할 수도 있고, 속으로 반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요즘 세상도 그렇지 않은가. 사람들은 너무 쉽게 옳다, 그르다를 말한다.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듣기도 전에 판단부터 내린다.
나는 잠깐 내 마음을 살폈다.
‘혹시 내가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내 의견이 무시됐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내 마음은 비교적 평온했다. 그래서 말을 꺼냈다.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표정과 시선을 부드럽게 유지하면서.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옳다, 그르다나 좋다, 나쁘다는 판단이 너무 빨리 나오면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거나, 논쟁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분위기가 잠깐 조용해졌다. 하지만 내 마음은 차분했다. 내 감정을 억누른 것도 아니고 상대를 공격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었다.
나중에 그 종교인은 오늘 자기가 한 번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방식을 ‘자기주장적 의사소통(Assertive communication)’이라고 부른다.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는 대화방식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차분한 목소리, 눈매, 표정 등 예의와 존중을 유지하는 비언어적 태도다.
대화에는 보통 세가지 태도가 있다고 한다. ▲자기 생각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소극적(passive) 태도 ▲자기 생각을 말하지만 상대를 눌러버리는 공격적(aggressive) 태도 ▲그 중간에 있는 자기주장적 소통이다.
자기 생각은 분명히 말하되 상대를 깎아내리지 않는 이 방식은 토론문화가 기초인 서구 사회에서 상담, 리더십, 교육, 갈등 관리 훈련에서 오래 가르쳐온 ‘건강한 자기 표현’ 방법이다.
이 방식의 핵심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1. ‘I 메시지 사용
상대를 향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고 시작한다.
(“당신 때문에 화가 난다” X, “나는 이런 상황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O)
2. 경계 설정 (Boundary setting)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명하게 말함
(“나는 이 부분까지는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렵습니다.”)
3. 사실 중심 표현
판단이나 비난 대신 객관적 사실을 말함
(“약속이 11시 30분이었는데 지금 11시 50분입니다.”)
4. 비언어적 태도
차분한 목소리, 안정된 눈맞춤, 열린 자세
돌이켜보면 나 역시 오랫동안 판단의 언어 속에서 살아왔고, 그 판단이 감정의 필터 없이 튀어나와 쉽게 논쟁이 되거나 인간관계를 해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다르게 말하려 한다.
• 내 마음이 평정한 상태에서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
•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적으로 만들지 않는 것.
이 방식이 훨씬 편하다. 나에게도,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