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눈 내리는 남산을 걸었을 때다. 순백의 눈이 산을 덮고 있었다.
그 하얀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이 조금 맑아지는 걸 느꼈다. 마치 오래 묵은 생각 위에 눈이 한 겹 덮인 듯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도 젊은이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
내 나이 일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안다. 그래서 더 분명해진다.
젊은이의 마음이란 순수, 열정, 호기심, 설렘, 희망 같은 것들이다.
노년이 되면 지식과 경험이 쌓인다. 그게 힘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음을 경직시키기도 한다.
“그건 다 겪어봤다.”
“세상은 원래 그렇다.”
이런 말들이 많아질수록 마음은 조금씩 굳는다.
그래서 더 의식적으로 젊은이의 마음을 선택하고 싶다.
그러나 젊은이처럼 행동하고 싶지는 않다. 젊은 마음이 곧 젊은 행동은 아니기 때문이다.
욕망을 즉각 표출하고 혈기로 결론을 내리고 충동적으로 관계에 뛰어드는 것, 그건 내가 원하는 젊음이 아니다.
젊은 마음을 품되 노년의 책임감과 절제를 놓지 않으려 한다.
이 마음이 생긴 데에는 젊은 시절의 실패, 우울을 통과한 시간, 그리고 오래 붙들어온 사유들이 있다.
인생은 한판 승부가 아니라 리그전?
나는 가끔 생각한다. 지금 이 삶이 과거의 내 선택들이 만든 결과일 수도 있겠다고.
그리고 지금의 선택이 또 다른 미래를 만든다고.
카르마나 윤회라는 말을 교리로 믿는 건 아니다. 그러나 삶의 태도로 받아들이기에는 나쁘지 않은 관점이다.
어쩌면 인생은 한 판 승부가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리그전일지도 모른다.
이 생이 또 다른 경기로 이어진다면 지금 이 생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
지금 이 판을 대충 치르고 다음 경기에서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설령 윤회가 없다 해도 죽음 앞에서 “나는 할 만큼 했다”는 말은 남기고 싶다.
이 생각이 요즘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보르도 레드와인처럼
눈 덮인 남산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지만 줄기에는 굵은 옹이들이 박혀 있다.
그 아래에는 수많은 뿌리와 상처의 흔적이 있다.
그 나무들이 어찌 비바람과 눈보라 없이 자랐겠는가. 고난이 없는 삶은 없다는 걸 나무가 말해주는 듯했다.
우리는 실수하고, 깨닫고, 다시 시도한다. 그렇게 조금씩 사람이 된다.
보르도의 레드 와인이 척박한 땅에서 깊은 맛을 내듯이.
산에 오를 때마다 나는 조금 겸허해진다. 그리고 감사하게 된다.
칠십 대의 시간은 귀하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