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만난 건 서울 안국동 조계사 건너편 건물의 작은 선원이었다. 신도 몇 명이 둘러앉아 있었고, 그녀는 검소한 장삼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말투는 또렷했고 표정에는 힘이 있었다. 차분하다기보다는, 여전히 세상 속에서 살아온 사람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는 원래 스님이 아니었다.
스물일곱에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30대에 넓은 집과 경제적 안정을 얻었고, 주변에서는 “성공했다”고 말했다. 스포츠카를 몰고, 살사댄스를 배우고, 비즈니스 클래스로 이동했다. 겉으로 보기엔 ‘잘 풀린 인생’이었다.
성공 뒤에도 사라지지 않던 허무
하지만 하루는 늘 비슷하게 끝났다고 했다. 집에 혼자 돌아오면 설명하기 어려운 허전함이 밀려왔다. 열심히 살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더 잘되면 사라질 줄 알았던 마음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사실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생각이 많았고 간혹 찾아오는 허무와 우울 속에서 힘들어하곤 했다.
2012년, 미국에서 한 법문을 듣는다. 금융업을 하다 출가한 베트남계 미국인 스님이었다. 법문은 길지 않았고 목소리도 낮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날 이후 참선을 시작했다.
변화는 미묘했지만 분명했다.
분노와 흥분을 더 빠르게 알아차리게 되었고, 모든 걸 통제하려 들던 완벽주의도 한결 느슨해졌다. “이 거래는 꼭 성사돼야 해”라는 집착이 줄자, 판단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수행에 시간을 쓰며 사업에 덜 매달렸는데,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사업은 여전히 잘 굴러갔고, 돈도 계속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이 편해질수록 허무는 더 커졌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게 끝인가’라는 질문은 더 잦아졌다. 결국 2019년, 그녀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출가했다.
출가 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실컷 놀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자유와 쾌락을 원껏 누려보자고. 결과는 예상과 같았다. 강렬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허무가 돌아왔다. 그때 확신이 생겼다. 이 길은 영원하지 않다.
수행은 관계도 바꾸었다. 30년 넘게 막혀 있던 아버지와의 관계도 풀렸다. 원망과 방어가 잦아들자 이해와 연민이 들어왔다. 마음을 들여다보니, 타인에게 투사하던 감정이 줄었다.
죽을 때 떠오르는 마지막 생각은?
출가 후 현안(賢安)이라는 법명을 받은 그녀는 지금 한국에 있다.
안국동과 성남의 작은 선원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수행하고, 책을 쓴다. 삶은 분명 예전보다 불편해 보인다. 그러나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 보였다. 이 사람은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자기 길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는 것.
그날 미 LA와 연결된 영상강론에서 그녀의 스승인 영화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임종할 때 떠오르는 마지막 생각은, 평소 그 사람이 반복해온 생각입니다. 여러분, 다음 생을 묻지말고, 이번 생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세요”
법문이 끝났을 때, 설명도 결론도 없었다. 다만 질문 하나가 남았다.
나는 지금, 어떤 식의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반복하고 있는 생각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