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의학자 박상철의 거룩한 장수론.

사람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늙으면 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늙으면 소용이 없어지고 짐만 되는 것 같아서 하는 자조적인 말이다. 그러면 지난 36년간 장수 연구를 해온 나는 세포 실험 얘기를 들려준다.

젊은 세포와 늙은 세포를 비교하면, 젊은 세포는 증식을 잘한다. 성장이 좋다. 늙은 세포는 증식을 안 한다. 증식 인자를 받아들이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젊은 세포와 늙은 세포를 가지고 자외선, 방사선 등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주어 세포를 죽이는 실험을 했다. 당연히 늙은 세포가 먼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 젊은 세포가 죽고, 늙은 세포는 잘 안 죽더라.

젊은 쥐와 늙은 쥐를 놓고도 비슷한 실험을 했다. 복강에 DNA 핵을 파괴하는 물질을 투여했는데, 여기서도 늙은 쥐가 잘 안 죽었고, 젊은 쥐가 더 잘 죽었다. 젊은 세포는 증식도 잘하고 죽기도 잘한다. 늙은 세포는 증식은 못 하지만, 잘 죽지 않는다. 여기서 깨달았다. 노화는 죽어가는 변화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한 변화인 것이다. 살아 남기 위해 증식을 포기한 것이다. 그런 생명 현상이 노화다.

최근 다양한 복제 연구가 많이 나왔다. 난자에 다 자란 개체의 핵을 넣었더니 태아 단계의 세포 분열이 일어나고, 거기서 줄기세포도 얻을 수 있게 됐다. 늙은 개체의 핵을 갖고 해도, 똑같은 반응이 일어난다. 늙은 세포나 늙은 개체는 살아가면서 하는 많은 손상들이 누적되어 있어서 복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복원 가능한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이제 늙은 세포나 늙은 개체를 젊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갖게 됐다.

노화는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다. 생명을 지키려는 생명체의 거룩한 노력이다. 이제 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장수가 우리한테 보너스가 될지, 아니면 사회적 짐이 될지는 개인 하기 나름이라고 본다.

개인이 최선을 다해서 건강을 지키고, 본인 능력을 스스로 유지하고, 부지런히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려고 노력하면, 장수는 축복이다. 이를 위해 장수의학자로서 던지는 세 가지 장수 행동 강령이 있다. 하자, 주자, 배우자이다.

첫째 ‘하자’는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무엇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나이 들어도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거 찾아서 열심히 해보자는 뜻이다. 둘째 ‘주자’는 나이가 들면 그만큼 세상 경륜도 많이 쌓였고, 여러 가지 경험도 많고, 가진 것도 좀 있으니, 이제 나눠주자는 의미다.

셋째 ‘배우자’는 나이가 들었어도 배울 일이 있으면 하나라도 더 배우자는 뜻이다. 21세기를 20세기 방식으로 살아서는 곤란하다. 생활 패턴이 지체되고, 사고도 정체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을 배우고, 인공지능(AI)도 써보고 하면서 세상과 같이 어우러져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하라는 것보다도 무엇이든 내가 줄 수 있는 사람도 되고, 배울 수도 있는 사람이 되자는 의미다.

지금까지 100세인 1500여 명과 그 가족을 만났다. 그러면서 100세라는 분들이 저렇게 건강하고, 이렇게 팔팔한가에 놀랐다. 100세가 되어도 아직도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분도 있고, 지금도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반성하는 분도 계시다.

나이가 85세 정도 넘어가면 세속적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훨씬 더 크고, 먼 것을 바라보는 ‘노년 초월’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독립적으로 건강을 지키면서도 세상과 연결되어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삶, 다들 이런 거룩한 장수를 위해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