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70대 이웃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아내가 요양병원으로 간 뒤부터 잠을 거의 못 자요. 밤이 너무 길어요.”

사랑하는 배우자를 상실하면 불면증을 앓을 수 있다. 그러나 상실 후 불면증을 마음의 문제로만 바라보면 나아지기 어렵다. /셔터스톡

상실 이후의 불면

부인은 치매가 깊어져 여섯 달 전부터 병원에 있었다. 집에는 혼자 남았다. 낮에는 비교적 괜찮은 척 지내지만, 밤이 되면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내가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라는 자책이 반복되고, 새벽이 가까워질수록 불안은 커진다.

이런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다그친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지.”

“이 나이에 이러면 안 되지.”

하지만 여기서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

상실 이후의 불면과 우울은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다.

이 단계는 신경계가 무너진 상태다.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계의 문제다

배우자 상실은 인간이 겪는 스트레스 중 가장 큰 사건으로 꼽힌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은 단순한 동반자가 아니라, 정서 조절을 함께 맡아주던 존재다.

그 사람이 사라지면 뇌는 ‘정서적 안전 기준점(Emotional Safety Anchor)’을 잃는다. 그러면 밤마다 각성 상태가 유지되고, 잠이 깨고, 생각이 반복된다.

불면·불안·자책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이유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명상이나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잠이 무너진 상태에서 마음 수련이나 깊은 성찰은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뇌가 쉬지 못하는데, 마음이 버틸 수는 없다. 이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치료다.

잠이 무너지면, 치료부터 시작하라

그래서 상실 이후 불면이 몇 주 이상 지속된다면, 정신과 진료를 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수면제나 항우울제는 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무너진 신경계를 원상 복귀시키기 위한 노력의 첫 단추다.

수면이 회복되어야 생각도 멈추고, 감정도 정리될 수 있다. 이 순서를 거꾸로 하면 회복은 오히려 늦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면 → 우울 → 각종 심신 질환 → 인지 기능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내 경험도 그렇다. 50대 후반, 큰 좌절을 겪고 집에 머물던 시절이 있었다. 밤마다 생각을 되새김질하듯 반복하다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몸은 건강했지만 잠이 무너지자 신경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우울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 빠져나오는 첫 단서는 ‘의지’가 아니라 잠이었다. 잠이 조금이라도 회복되자, 비로소 생각이 정리되고 몸에 힘이 돌아왔다. 그때서야 운동도, 상담도, 의미도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했다.

정신과 진료를 통해 신경계를 치료하는 것이 상실과 우울로 인한 불면을 치료하는 첫 단추다. /셔터스톡

그래서 상실의 1단계에서 꼭 기억해야 할 원칙은 이것이다.

“잠이 무너졌다면, 마음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신경계를 먼저 치료하라.”

정신과를 찾아가라. 가능하다면 신뢰할 수 있는 의사를 만나라.

이건 약한 선택이 아니다.

다시 살아가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시작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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