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뉴스를 덜 보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포털을 여는 습관부터 고쳤다. 사건과 논쟁, 분노를 부추기는 말들이 하루의 기분을 너무 쉽게 망가뜨린다는 걸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외면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내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이자는 선택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비슷했다.
연말로 갈수록 모임이 잦아졌지만, 예전처럼 시사나 정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의견을 내지 않은 게 아니라, 굳이 날 세우지 않기로 한 것이다.
요즘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들 힘든 처지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불안이 있다. 그걸 설득하거나 바로잡으려 들기보다, 그냥 안부만 묻고 웃고 헤어지는 쪽이 훨씬 덜 피곤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거리를 두자 관계가 오히려 부드러워졌다.
술도 마찬가지였다.
힘들 때면 술로 잊는 게 가장 빠른 방법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다. 올해도 여전히 술자리를 가졌다. 다만 예전처럼 취하기 위해 마시지는 않았다.
오히려 맨정신으로 불편한 마음을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 괜히 울컥하는 이유, 이유 없이 가라앉는 날의 기분을 애써 밀어내지 않고 그냥 두었다. 놀랍게도, 그 편이 훨씬 마음을 빨리 진정시켰다.
원래 인생이 그런 것 아닐까 싶었다.
좋을 때가 있으면, 이유 없이 나쁜 때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훨씬 더 어려운 시절을 건너왔다. 40~50년 전의 가난과 독재, 80년 전의 전쟁과 식민을 생각하면 지금의 불안은 그저 또 다른 얼굴의 시련일 뿐이다.
그때도 사람들은 버텼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올해 세계를 둘러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는 다시 선택된 지도자가 마치 왕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실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유럽의 우방국들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기대와 현실의 간극 앞에서 허탈해 하는 표정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매 순간 분노하고 좌절하는 게 해답은 아닐 것이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태도는 무기력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기 위한 지혜에 가깝다.
나는 올해를 ‘잘 산 해’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잘 버틴 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별로 성취한 것도 없고, 자랑할 만한 결과도 없지만,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마다 한 번 더 숨을 고르고 하루를 넘겼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치지 않으려고 말을 줄였고, 내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연말이 되면 우리는 자꾸 의미를 정리하려 든다. 무엇을 남겼는지, 얼마나 성장했는지 묻는다.
하지만 어떤 해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 올해를 돌아보며 내가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왔다’고. 올해를 잘 버텼다는 말은, 생각보다 큰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