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연말 모임이 많았다. 고교 졸업 50주년, 대학 입학 50주년까지 겹쳐 더 분주했다. 어찌하다 보니 이런 저런 모임에 회장으로 불려 다닌 자리도 있었다.

어떤 모임에서는 ‘아, 우리 잘 늙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자리에서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생각보다 오래 남아서다.

특히 동창 모임이 유독 어려운 이유는 단순하다.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눈짓 하나, 웃음의 속도, 말끝의 온도만으로도 상대의 마음을 짐작해버린다. 그리고 그 시선은 어김없이 내게도 되돌아온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의례적으로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었을 지, 농담으로 한 이야기가 상처를 건드렸을 지 집에 와서야 곱씹어보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귀해진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진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다만, 오래된 관계를 성숙하게 이어가기 위해 피해야 할 몇 가지는 분명해진다.

연말에는 모임이 많다. 친한 사이라고, 기분이 좋다고 마음을 놓고 행동하다가 자칫 결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셔터스톡

첫째, 사람을 과거에 묶지 말 것.

“넌 원래 그랬잖아”라는 말은 친근한 회상처럼 들려도 사실은 낙인에 가깝다. 좋은 것은 몰라도 그 친구의 실수나 찌질한 면을 들추는 것. 이 나이에, 누구도 예전 모습으로 고정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둘째, 자기 얘기를 길게 하지 말 것

“나 때는 말이야…” 특히 자신의 성취나 무용담은 자제해야 한다. 과거 직함이나 영향력을 꺼내는 순간 공기는 묘하게 무거워진다.

또한 ‘자랑’ 못지 않게 위험한 건 ‘설명’이다. 버트란트 러셀이 지적한 것처럼 어떤 주제든 설명이 길어지면, 듣는 쪽의 표정은 점점 멀어진다. 나 역시 가끔 이 선을 넘고는 뒤늦게 깨닫는다.

셋째, 실패·병·가정사는 묻지 않는 것이 예의다.

50대 이후의 삶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정이 하나 이상은 있다. 더구나 자리에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굳이 꺼낼 필요는 없다. 호기심보다 침묵이 더 따뜻할 때가 있다.

넷째, 사람을 관리하려 들지 말 것.

“요즘 왜 안 나와?”격려의 말처럼 보이지만 상대에 따라서는 간섭으로 들릴 수 있다. 안부 인사라며 던진 말이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뒤늦게 배웠다.

다섯째, 회장은 말이 적을수록 좋다.

잘되는 모임일수록 회장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필요할 때만 나서고, 말은 짧다. 회장이 가장 많이 말한 날, 그 모임은 대체로 피곤해진다. 이 또한 나의 오래된 반성 목록 중 하나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가장 안전한 태도는 아마 이것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설명을 줄이고, 판단을 미루는 말이다.

관계를 이기지 않고, 모임을 살리는 방향으로 흘려 보내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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