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癌)과 깡패를 분류할 때 공통점이 있다. 암세포는 성질 자체가 얼마나 악성이냐를 따져서 예후를 예측하고, 깡패는 폭력이 얼마나 악질이냐에 따라 죄질을 따진다. 암이 어디까지 퍼졌느냐를 보고 말기 여부를 가늠하고, 깡패들이 몰려다니며 지역을 장악하면 조폭으로 분류된다. 이 비교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등급과 단계 차이는 유사하다.
당뇨병도 그렇다. 같은 당뇨병이라도 인슐린 분비 기능이 비교적 좋아 합병증이 적게 늦게 오는 순한 단계가 있고, 어떤 이는 합병증이 신장, 심장, 망막 등 신체 곳곳으로 퍼진 말기 단계에 있다.
암이나 당뇨병이나 조기 발견, 조기 관리할수록 생존율이 높아지는데, 많은 사람이 “당뇨병은 다 같은 거 아니냐?”는 인식을 갖고 있어, 인슐린 기능 상태와 합병증 발생 여부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다. 이에 대한당뇨병학회는 당뇨병도 암처럼 1~4기로 등급과 병기를 나눠서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당뇨병을 줄이려는 사업을 시작했다.
당뇨병 환자 분류 기준은 공복 혈당이 126(mg/dL)을 넘거나, 당화혈색소가 6.5% 이상이거나, 현재 당뇨병 약제로 치료받고 있는 사람 등이다. ‘당뇨병 팩트시트 2024’에 따르면, 이 기준에 부합한 당뇨병 환자는 533만명이다. 30세 이상 성인 7명 중 1명(14.8%)이 당뇨병을 가지고 있다. 65세 이상에서는 10명 중 3명(28.0%)이다.
당뇨병학회 조영민(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법제이사는 “533만명 당뇨병 환자가 같은 인슐린 분비 기능을 갖고 있지 않고, 합병증 발생도 속도나 범위가 각각 다르다”며 “인슐린 분비 등급과 합병증 범위에 따라 중증도를 분류했다”고 말했다. 현재 당뇨병은 선천적으로 인슐린 분비가 적은 1형(소아)과 나이 들어 인슐린 작동 효율이 떨어지는 2형(성인)으로만 분류된다.
당뇨병은 높은 혈당이 혈관 내피를 손상시켜 미세혈관 합병증(망막병증, 신장병증, 말초신경병증)과 대혈관 합병증(심근경색증, 뇌졸중, 말초혈관질환), 혈류 부족으로 발에 궤양이 생기는 당뇨발 등이 있다.
당뇨병학회가 제시하는 중증도 분류에 따르면, 1기는 경도(輕度) 대사 이상 단계로, 합병증은 없지만 고혈압, 비만 등 위험 요인이 있는 상태다. 이 단계에서는 생활습관 교정이나 경구약으로 조절 가능하다. 혈액검사로 인슐린이 얼마나 잘 분비되는지를 평가하는 지표, 비공복 C-펩타이드 수치는 600을 넘는다. 비교적 인슐린 분비는 잘 이뤄진다는 의미다.
2기 중등도 대사 이상 단계에서는 검사에서만 발견되는 초기 합병증이 있다. 이때는 한 가지 약물로 혈당 관리가 안 되고, 다제 약물 요법이 필요하다. 3기 중증 대사 이상 단계는 협심증, 신장 기능 저하, 시력 이상 등 임상적으로 확인되는 단계다. 인슐린 주사가 치료에 필수적이다. 매우 심한 중증 대사 이상인 4기는 심근경색증, 말기 신부전, 실명 등 생명을 위협하는 합병증이 나온 단계다. 인슐린이 거의 분비되지 않는 결핍 상태다. 현재 3~4기 중증 이상 상태는 전체 환자의 약 20%로 추산된다.
당뇨병학회 차봉수(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이사장은 “당뇨병은 환자 개개인의 임상적 특징이 크게 다른 복합질환임에도 현행 분류 체계로는 중증도와 위험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 했다”며 “암처럼 나누는 당뇨병 중증도 분류를 계기로 환자와 의료인이 합병증 발생 여부를 체계적으로 찾아내고, 중증도 관리에 나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