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를 돌보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노쇠 위험이 더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박유진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황인철 가천대 길병원 가정의학과·안홍엽 동국대 통계학과 교수 공동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국제 노인의학·노인학’(Geriatrics and gerontology international) 최신호를 통해 손주 돌봄이 노쇠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했다.
연구는 2006년 한국고령화연구패널(KLoSA)에 참여한 노인 8744명을 14년간 추적 관찰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연구팀은 대상자들을 손주 돌봄 그룹과 비돌봄 그룹으로 나누고, 나이·성별·체질량지수·만성질환·소득·흡연·음주 등 건강 관련 요인을 모두 보정한 뒤 그룹 간 노쇠화를 비교했다. 여기에서 손주 돌봄 여부는 ‘지난 1년간 10세 미만 손주를 돌본 적 있는가’에 대한 응답을 기준으로 했다. 노쇠화는 악력 저하·탈진감·사회적 고립 등을 점수화해 평가했다.
그 결과 손주 돌봄 그룹 내 여성 노인의 노쇠 발생 위험은 비돌봄 그룹에 비해 22%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남성 노인도 같은 비교 조건에서 노쇠 발생 위험이 18% 낮았지만, 통계적 유의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여성에게서 두드러진 효과가 나타난 이유는 손주 돌봄이 주로 할머니를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연구에서도 손주 돌봄 그룹의 75.4%가 여성 노인이었다.
연구팀은 “손주 돌봄이 한국 여성 노인에게 삶의 의미와 역할, 일상 활동 등을 제공함으로써 신체·정서적 활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감정이 노년기 심리 건강에 버팀목이 되며, 통원·식사 준비·놀이 등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임이 증가해 근력 유지에도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구팀은 손주 돌봄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했다. 돌봄 시간이 과도하거나 원하지 않는 돌봄을 의무감으로 떠안으면 신체 피로와 스트레스가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한국에서 손주 돌봄은 단순 가족 보조 기능을 넘어 노년 건강의 중요한 변수로 부상했다”며 “정서적 보람과 신체적 활동이 결합한 손주 돌봄이 적당한 범위 안에서 제공될 때 노년의 몸을 지키는 새로운 건강 자원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