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향하는 관문이다.”

나는 이 문구를 좋아한다. 죽음이 종결이 아니라 하나의 관문이라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이 생을 더 잘 살아가게 만드는 초대장으로 볼 수 있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가는 관문이 아닐까. /셔터스톡

삶을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 죽음을 바라본다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웰 다잉’의 본질이다.

30여년전 기자 시절, 나는 인간의 본성을 알고 싶어 과거 세간을 뒤흔들어 놓았던 사형수 4명의 최후 순간을 추적한 적이 있다.

• 김대두: 1975년 두달간 전국 돌며 17명 부녀자 잔혹 살인(건국이래 희대의 살인마)

• 박철웅: 1979년 인사동 금당 골동품상 부부 살인 및 암매장(끝없는 욕망의 변주곡)

• 주영형: 1982년 중학생 제자 윤상군 유괴살인(명문대출신 체육교사의 일탈)

• 고금석: 1986년 강남 서진룸살롱 집단살인(우직한 ‘주먹’의 야수성)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내 사형장. 1910년대 지어진 지상 1층과 지하 1층의 일본식 목조건물로 1층에는 교수형을 집행하기 위해 여닫히는 마루판과 교수형에 쓰는 줄, 가림막 뒤쪽에 마루판을 밑으로 내리는 장치가 전시돼 있다. 마루판 아래의 지하실은 시신을 수습했던 공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그때 나는 인생의 막장 드라마를 보았다. 그러나 잔혹한 범죄자였지만, 마지막엔 모두 인간이었다. 기도를 올리고, 가족을 그리워하고, 눈을 감았다.

그들의 유언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그리고 다시 산다면 잘~ 살고 싶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진실해진다. 나는 그 현장을 지켜보며 오히려 희망을 느꼈다.

극악한 죄를 지은 이들조차 마지막엔 용서를 구했다.

그 안엔 아직 ‘빛’이 있었다.

선과 악, 이성과 본능, 그 모든 것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한다는 사실 —

그 깨달음은 내게 큰 울림을 남겼다.

그때 이후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묻기 시작했다.

후회와 두려움이 가득한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 감사와 담담함으로 떠날 수 있는 삶.

그것이 진정한 웰 다잉(Well-dying)이며, 곧 웰빙(Well-being)의 완성이다.

중세 수도사들이 남긴 말이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하지만 그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라는 뜻이 아니다.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오늘을 제대로 살아라’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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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희망보다 절망이 더 다가오는, 소란스런 삶 속에서 오는22일 토요일, <마음 디톡스 ⑧ ‘웰 다잉 & 사후생’>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완화의료 간호사, 죽음학자, 예술가들과 함께 ‘죽음이 우리 삶에 던지는 메시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사형수의 최후에서 본 인간의 본성,

임종의 현장에서 느낀 마지막 숨결,

그리고 사후세계를 긍정하는 과학적 근거들.

모두가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모인다.

“죽음을 직면할 때, 비로소 삶은 선명해진다.”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그건 두려움의 시간일까,

아니면 평화와 감사의 시간일까.

그 대답은 아마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