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당의 조명이 천천히 어두워지고, 무대 스크린에 흑백 졸업사진이 떠올랐다. 수줍은 미소, 단정한 교복, 앳된 얼굴들. 그 소년들이 이제 칠순의 백발 노인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주름진 손으로 옆 친구의 손을 잡았고, 누군가는 벗은 머리 위로 모자를 눌러썼다.
그래도 교가와 응원가를 부르는 목소리는 힘찼다.
수원시장배 육체미대회에서 장년부 2위를 했다는 역도 금메달리스트 안지영은 웃옷을 벗고 여전히 탄탄한 근육을 자랑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그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인용하며 “이젠 돈과 명예보다 근육 부자가 되자”며 웃겼다.
이어 무대에는 배우 송승환의 역작인 ‘난타공연’팀이 올라 북소리로 분위기를 달궜다.
황반변성으로 가까운 시야만 보인다고 했지만, 송승환은 여전히 연기생활을 하며 삶의 긴장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칠순을 맞이하니 인생이 별거 아니더군요. 앞으로는 좀 더 편안히, 친구들과 오래 만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날은 단순한 동창회가 아니었다. 고교 졸업 50주년, 인생 반세기의 축제였다.
19살의 푸르른 청춘이 70살의 노인으로 변했지만, 그들의 눈빛엔 여전히 호기심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우리 세대는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태어나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 가난과 격동의 시대를 통과해온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 국민소득 80달러의 나라가 지금은 3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 긴 세월 동안 우리는 버티고, 일하고, 가정을 지키며 여기까지 왔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대견했다. 우리 모두는 자랑스런 ‘인생의 생환자’,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마음 한 켠은 허전했다. 인생의 석양이 길게 드리운 자리에서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돌이켜보면 전반전은 명확했다. 성장, 도전, 그리고 함께라는 이름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후반전은 다르다. AI, 초고령사회, 이리저리 찢기고 분열된 세상 속에서 무엇이 우리를 다시 일으킬 힘이 될까.
술잔이 오가고, 노래가 이어지는 사이 문득 깨달았다.
“오늘의 졸업식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다음 인생의 입학식이구나.”
우리는 육체적으로 노쇠해가지만 정신적으로 여전히 배울 수 있고, 우리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에게 희망과 지혜의 불씨를 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아야 한다.
청춘이란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정신적 태도’라는 것을 지금 우리는 알고 있지 않는가.
행사가 끝난 뒤 바깥 밤공기를 마셨다. 누군가가 허리를 굽혀 신발끈을 다시 묶고 있었다. 그 장면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그건 단순한 묶음이 아니라 인생 후반전을 향한 다짐처럼 느껴졌다. 세월이 흘러도, 어떤 상황이 와도, 그렇게 신발끈을 다시 묶는 자세로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청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