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코(日光)의 단풍은 곱게 물들어 있었다. 영국대사관 별장을 구경하다 문득 멈췄다. 전시 영상 속에는 1929년 여름, 이곳에서 낚시와 보트를 즐기던영국 외교관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흐르고 있었다.

그 시절, 조국은 식민지로 신음하던 나라였다. 그 해 일어난 6.10만세사건의 함성소리가 떠올랐다.

같은 장소, 같은 햇살 아래서 나는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백 년 만에 바뀐 풍경이었다.

처음 일본을 찾았던 건 1989년 봄이었다. 도쿄의 빌딩 숲, 질서 정연한 지하철내 풍경, 전자제품의 정교함이 주는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영국 외교관으로 메이지 유신에 큰 영향을 준 어니스트 사토가 1896년 닛코 주젠지 호수 남쪽 기슭에 지은 영국 대사관 별장. 이후 120년의 세월을 거쳐 지금은 ‘영국 대사관 별장 기념 공원’으로 일반 공개되고 있다. /마음건강 길

모든 게 우리보다 세련되고 앞서 있었다. 한 끼 식사조차 비싸서 주저하게 만들던 물가.

그리고 어딘가 모를 열등감이 늘 따라붙었다.

“이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 그 시선이 두려워 늘 움츠러들곤 했다.

이후 일본을 자주 가면서도 그 감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다. 일본인이 전혀 낯설지 않았고, 백화점의 상품, 호텔의 서비스, 거리의 질서도 그랬다.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았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오래 묵은 돌덩이가 떨어져 나갔다. ‘이제는 대등하다’는 감정, ‘우리가 잘해왔다’는 조용한 자부심이 밀려왔다.

그건 단순히 한 개인의 심리 변화가 아니었다.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이 바뀐 것이었다.

우리 세대는 한 세기 전 식민의 상처를 안고 태어났고, ‘일본=선진국, 한국=추격자’라는 공식 속에서 자라났다.

도쿄 우에노 공원에 있는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에도시대 일본 군인들의 갑옷. 전시 유물들이 기대 이상은 아니었고, 우리 국립박물관 소장 유물보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더 우수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음건강 길

그러나 지난 70년, 우리는 그 간극을 기적처럼 좁혀 왔다. 박정희·김대중 같은 리더들의 헌신, 이병철·정주영 같은 기업가들의 도전, 그리고 수많은 무명의 노동자, 관리, 교사, 군인, 체육인, 예술가, 농부들의 땀.그 집단적 노력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이제 일본 여행은 더 이상 ‘타자와의 비교’가 아니다. 한국인의 무의식 속 열등감이 사라지고 ‘자존감과 평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는 한 개인이 수행으로 얻은 깨달음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가 함께 이룬 사회적 성취요, 마음의 진화였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제 우리는 그 자신감을 서로를 향해 휘두르고 있다.

정치와 사회는 진영으로 갈라져 싸우고,서로가 서로를, 과거를,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

이 판국에 젊은 세대는 지향점을 잃고 헤매고 있고, 사회 전체가 깊은 우울의 수렁 속에 빠져 있다. 우리가 이룩한 성취의 뿌리를 우리 스스로 흔들고 있다.

닛코 국립공원의 해발 1,400m정도의 높은 위치에 있는 센조가하라(戦場ヶ原) 습지. 나무로 만든 길과 여러 종류의 식물들, 그리고 긴 시냇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날 오후 나는 닛코의 습지 숲길을 걸었다. 단풍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다 천천히 제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장면이 말해주는 듯했다. 세상은 서로를 밀고 당기며 싸우지만 결국 제 자리를 찾아간다고. 우리가 걸어온 길도 그랬고, 앞으로의 길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나무 계단 끝에서 나는 발을 멈췄다. 바람은 한결 부드러웠고,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들은 ‘이뤄낸 것보다 더 큰 것을 믿으라’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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