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의 질병 진단은 병원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CT, MRI, 심혈관조영술 등 고도화된 진단 장비가 병원에 모이게 됐기 때문이다. 환자가 병원을 찾아 검사받고, 그 결과가 질병 기준에 부합하면 특정 질병 환자가 되는 식이다.
이런 진단 시스템의 맹점은 몸속에 질병이 있는데도 병원 검사를 할 때 증세가 나타나지 않으면, 멀쩡한 상태로 나오면서 질병 진단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간헐적으로 증세가 생기는 부정맥이다.
최근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발달로 이러한 진단 맹점이 해결되고 있다. 사람 몸에 붙이는 기구로 24시간 연속으로 심전도를 체크할 수 있게 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간헐적으로 발현하는 질병 증세를 잡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시간 경과에 따른 질병 치료 결과를 연속적으로 추적할 수도 있기에 질병 관리의 혁신으로도 평가받는다.
40대 남성 A씨는 가끔 뜬금없이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세가 있었다. 통증이 없기에 별거 아니라고 여겼는데, 최근 들어서는 일주일에 1~2회 그런 증세가 생겼다. 한번 두근거릴 때는 1시간 이상 갈 때도 있었다. 대학병원 심장내과를 찾아가 심전도와 혈액 검사 등을 받았지만,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A씨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을 때는 두근거리는 증세가 없었다.
이에 A씨는 몸에 붙여 심전도를 24시간 연속으로 측정하는 패치를 가슴에 붙였다. 500원 동전 크기를 왼쪽 가슴 위에 붙이고 평소대로 일상생활을 하며 보냈다. 5일째 되는 날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세가 생겼고, 그때의 심전도 변화는 패치에 기록됐다. 일주일 후 심전도 패치를 떼어 병원에서 분석한 결과, 두근거릴 당시 심장의 왼쪽 심방이 불규칙하게 빨리 뛰는 부정맥인 심방세동이 발견됐다.
A씨가 인지하지 못했던 심방세동이 하나 더 있었고, 심방세동이 발생했을 때는 심박수가 분당 170회에 이르렀다. 이는 정상보다 두 배 빨리 뛴 것으로, 심장이 박동했다기보다는 ‘부르르~’ 떨고 박동이 멈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심장 안에서 피가 돌지 않고, 고이면서 피딱지(혈전)가 생길 수 있다. 혈전이 나중에 심장을 나와서 경동맥을 타고 뇌로 날아가면 뇌경색이 일어나게 된다. 이에 의료진은 A씨 심장 안에서 심장세동 전기 스파크를 일으키는 곳을 찾아내고, 그곳을 고주파열로 지져 없애는 치료를 했다. 비로소 A씨의 심방세동과 두근거리는 증세가 사라졌다.
부정맥은 돌연사의 주요 원인으로, 고령일수록 심장 회로가 노후화되면서 부정맥 발생 빈도가 올라간다. 80대가 되면 부정맥 발생이 10%에 이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부정맥 환자 수는 2018년 37만여 명에서 2022년 46만여 명으로,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비만, 흡연 영향으로 젊은 층에서도 증가세를 보인다.
몸에 붙이고 다니는 심전도 패치는 부정맥 치료 효과를 보는 데도 쓰인다. 오용석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발작성 심방세동으로 진단받고 항부정맥제 약물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 59명을 대상으로 11일 동안 심전도 패치(에이티센스)로 모니터링한 결과, 절반(47%)에서 숨어 있던 심방세동 또는 심방빈맥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는 심전도 전극과 기기를 하루 동안 몸에 붙여 매고 다니는 기존의 홀터 검사보다 3배 많은 진단율이다.
현재 심전도 패치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며, 환자 부담은 2~14일 붙이는 기간에 따라 3만~16만원이다. 적용 대상은 주로 가슴 두근거림이 간혹 발생되어 심방세동이 의심되나 심전도는 정상인 경우, 실신을 했는데 원인을 못 찾는 경우, 원인 모를 어지럼증이 간헐적으로 있을 때, 일과성 뇌허혈(TIA) 증세 후 무증상 부정맥을 찾을 때 등이다<그래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