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가 자살을 생각할 때, 자살 생각을 지워주는 약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자살을 ‘살자’로 바꿔주는 약, ‘에스 케타민’ 약물을 말한다. 제품명은 ‘스프라바토’로, 빠른 흡수를 위해 코 안에 뿌리는 스프레이 약물이다.

20대 여성 A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불안과 우울 증세에 시달렸다. 중증 우울증으로 진행된 그녀의 무력감은 여러 약물 치료에도 큰 호전이 없었다. 충동적인 자살 생각에 사로잡혔던 A씨는 스프라바토를 뿌리고 극적인 변화를 맞았다. 신기하게도 자살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고 무언가 하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게 생겼다는 것이다.

김민경 일산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항우울제 치료를 받는 환자의 약 3분의 1은 적정 용량 약물을 충분한 기간 동안 복용했음에도 증상 개선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며 “이런 환자들은 더욱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상태가 되어 자살 생각을 하게 되는데, 스프라바토는 이런 정신적 응급 상황에서 자살을 줄이는 유용한 약물”이라고 말했다.

스프라바토 주성분인 에스 케타민은 우울증과 관련된 뇌 피질 신경세포 시냅스 연결성을 향상시켜 우울증을 개선하고 자살 생각을 줄인다. 국내에서 스프라바토는 지난 2020년 사용 허가를 받았다.

스프라바토는 한 번 투여로 끝나는 게 아니다. 권장 치료 기간은 6개월로, 첫 번째 달은 경구용 항우울제와 병용 요법으로 일주일에 두 번 뿌린다.

김민경 교수는 “많은 환자들이 이 유도기만 지나도 중증 우울증 호전을 극적으로 경험한다”며 “자살 시도까지 했던 여성 환자가 스프라바토 치료 후 우울증이 많이 좋아져 최근에 결혼 청첩장을 보내온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1000만원 정도 드는 고가의 약값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하기에 처방이 적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상황에서 중증 우울증으로 자살 생각에 이른 환자에게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