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늦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배낭을 챙겼다. 북한산을 갈까, 인왕산을 갈까 망설이다 집을 나서는 순간 내리는 가랑비에 남산으로 방향을 바꿨다.

나는 서울 후암동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남산을 올라갔다. 갈 때마다 느끼는 푸근함은 고향집 마당 같다. 여의도에서 버스를 타고 동자동에 내려 후암시장과 해방촌을 지나 남산 둘레길로 들어섰다.

여름 아침, 비 속을 걷는 등산은 묘한 맛이 있다. 여름비에 젖은 나무와 흙은 생명의 에너지를 가득 품고 있었다. 인적 드문 숲길을 걸으며, 일주일간 쌓였던 피로가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마음건강 길

여름비에 젖은 나무와 흙은 생명의 에너지를 가득 품고 있었다. 인적 드문 숲길을 걸으며, 일주일간 쌓였던 피로가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여름 아침, 비 속을 걷는 등산은 묘한 맛이 있다.

남산식물원 공원 벤치에 앉아 과일을 먹는데, 근처에서 30대 부부가 서너 살 딸아이 앞에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아이를 번쩍 들어 유모차에 태우는 아버지의 굳은 표정이 사태를 말해줬다.

그 장면은 평일 점심 무렵 사무실 근처 시청 앞 거리에서 마주치는 젊은 직장인들의 웃음과 겹쳤다. 겉으론 밝지만 속으론 어두운 표정들. 지금 한국은 자살률과 우울증 유병률이 세계 상위권이다.

가족만의 공간에선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온다. 우리 사회가 더 영악해졌지만, 동시에 더 상처 입기 쉬운 시대다.

루게릭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남편 곁에서 그녀는 간병하면서 다섯 아이를 키웠다. 그녀의 유일한 탈출구는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이었다. /아마존

며칠 전 읽은 글 『바다가 나를 살렸다』가 떠올랐다. 아일랜드의 30대 여성은 시한부 남편과 다섯 아이를 돌보느라 우울과 불안, 분노에 잠식됐다. 그러다 어린 시절 수영 후 느꼈던 건강한 감각을 떠올리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매일 수영을 하며 조금씩 균형을 되찾은 그녀는 비슷한 처지의 주부들과 ‘비극의 아내 수영클럽(Tragic Wives Swimming Club)’을 만들어 함께 바다에 들어갔다. 차가운 물속에서 그녀들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녀는 자신의 스토리를 『내 부족(族)을 찾았다(I Found My Tribe)』란 책으로 발간했다.

나에게 그 바다가 바로 산이다. 휴일 새벽, 신발끈을 질끈 묶고 산으로 향한다. 걸으며 호흡에 맞춰 생각을 단순하게 정리하는 ‘활동 명상’을 한다. 그러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거칠었던 내면의 말투와 비판적인 시선이 사라진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나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친절해진다. 그때 비로소 희망과 자신감이 돌아온다. 이것이 내가 찾은 마음피트니스다.

바깥 상황이 아무리 소란스럽다고 해도 상관없이, 누구나 이런 자기만의 회복 루틴을 가진다면 우리들은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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