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추출물이 경도 인지장애(MCI) 환자의 인지 기능을 보호하고 치매 진행을 늦춰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용인효자병원 곽용태 박사와 순천향대병원 양영순 교수 연구팀은 MCI 환자들에게 은행잎 추출물과 표준 인지 개선제(오메가3 등)를 1년간 나눠 투여하고 그 경과를 비교한 결과를 4일 국제 학술지 ‘신경학 프런티어스’(Frontiers in Neurology)를 통해 발표했다. 치매 고위험군을 뜻하는 MCI는 기억력이나 기타 인지 기능이 객관적인 검사에서 확인될 정도로 뚜렷하게 감퇴한 상태를 말한다. 다만 일상생활 수행 능력은 대체로 보존돼 있다.
은행잎 추출물은 한국과 중국 등 전통 의학에서 기억력 증진과 노화 관련 인지 저하 완화 등을 위한 약제로 사용돼 왔다. 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제제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나, 치매 자체의 진행을 막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 경구용 치료 약물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연구팀은 MCI 환자에게 은행잎 추출물 단독 요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불확실하다며 이번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연구 대상은 정확한 치매 진단법 중 하나인 ‘아밀로이드 PET’(amyloid PET) 검사에서 MCI로 확진된 64명을 선별해 결정했다. 연구팀은 이 중 42명(평균 나이 65.8세)에게 시판 중인 은행잎 추출물 제제(일일 240㎎)를, 다른 22명(68.6세)에게 표준 인지 개선제를 1년간 복용하게 했다. 이어 인지 기능과 혈액 내 치매 물질 변화 등을 비교해 살펴봤다.
그 결과 은행잎 추출물을 복용한 전원의 한국형 간이정신상태검사(K-MMSE)와 도구적 일상생활 활동 측정(K-IADL) 점수가 유지되거나 향상돼 치료 반응률 100%를 보였다. 반면 표준 인지 개선제를 복용한 사람들은 치료 반응률이 59.1%에 그쳤고 40% 이상이 인지 및 일상 기능 저하 증상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혈액 내 아밀로이드 올리고머(혈장 MDS-Oaβ)도 은행잎 추출물 그룹은 0.88ng/㎖에서 0.80ng/㎖로 유의미하게 감소했으나, 표준 인지 개선제 그룹은 0.89ng/㎖에서 0.91ng/㎖로 오히려 증가했다. 아밀로이드 올리고머는 치매 병리 물질인 아밀로이드 베타(Aβ)가 뭉쳐 신경 독성 플라크(plaque)를 형성하는 중간 단계다. 연구팀은 “은행잎 추출물이 인지 기능 개선뿐 아니라 아밀로이드 베타의 응집을 억제해 치매의 근본적 진행을 늦출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또 은행잎 추출물 그룹은 단 한 명도 치매로 진행되지 않았으나, 표준 인지 개선제 그룹은 13.6%(3명)가 치매 판정을 받았다. 보통 아밀로이드 PET 검사로 확진된 MCI 환자의 1년 내 치매 전환율은 10~30%로 알려져 있다.
곽 박사는 “은행잎 추출물은 오랜 기간 사용돼 장기적 안전성이 입증된 저렴한 천연물”이라며 “치매 치료 및 지연 효과가 더 명확히 밝혀져 널리 사용된다면 치매 환자와 가족, 국가 건보 재정까지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