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이 가까워오던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앞으로 인생 후반기엔 뭘 하며 살아야 할까?”
그 무렵 나는 우울증과 싸우고 있었다. 몸은 살아 있으나 마음은 눅눅했고, 세상과의 접촉면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그때 선택한 게 봉사활동이었다. 거창하지 않았다. 몇몇 후배들과 한 달에 한 번, 보육원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었다.
“어릴 때 좋은 기억이 많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더라”는 단순한 마음에서 출발했다.
기억 하나가 사람을 지탱한다면
우리는 대단한 걸 해주는 게 아니다. 그저 놀이터나 극장에서 함께 놀고, 간단한 저녁을 먹고 돌아올 뿐이다. 그러나 안다. 좋은 기억 하나가 그 아이에게 평생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어릴 때도 그랬다. 동네 아저씨가 사준 짜장면, 담임 선생님의 한마디 칭찬, 이웃 형의 자전거 태워주기 같은 게 부모의 말보다 더 오래 남았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도, 그런 작은 기억 하나일지 모른다.
2016년 시작된 인연, 10년이 되다
봉사는 2016년 시작됐다. 보육원 측에서는 “아이들과 깊은 유대를 맺으려면 2~3년 꾸준히 만나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 5살 아이들과 시작했고, 그 아이들은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다. 그중에는 베이비박스를 통해 온 아기들도 있었고, 부모 사정으로 위탁된 아이들도 있었다.
요즘 보육원 아이들은 예의 바르고, 사회성도 좋다. 반장이나 학년 대표를 맡는 아이도 많다. 물론 속마음의 외로움까지 없진 않겠지만, 자라는 모습은 대견하고 희망적이다.
봉사자는 바뀌어도 마음은 남는다
함께하는 봉사자들도 세월 따라 바뀌었다. 지금은 2030세대 젊은 친구들도 함께하며 세대 어울림이 이뤄진다.
아이들과 있으면 세상 걱정이 잊힌다. 이 작은 봉사는 내게 ‘행위 명상’이고,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이다. 외형상 아이들을 돕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 자신을 돕고 있었다.
“할아버지, 꼭 또 만나러 와주세요”
2년 반 함께한 아이가 5학년이 되어 지난 주말 우리와 헤어지던 날, 수줍어 하며 조그만 봉투를 내게 건넸다.“할아버지, 집에 가서 보세요.”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저는 OOO이에요.우리 처음 만난 날 선생님 놀이한 거 기억하시죠?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해요.할아버지, 우리 모임이 끝나도 항상 만나러 와주세요.그리고 6학년이 되면 전교회장 선거에 나가서 가능하면 전교회장이 될께요.할아버지, 감기, 독감, 코로나 항상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사랑해요.OOO 올림.”
그날, 오랜만에 마음속에서 건강한 울컥함이 밀려왔다.우리가 건넨 건 하루들이었지만, 그 아이는 그것을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