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조선일보 의학 유튜브 채널 ‘오!건강’의 ‘명의의 전당’에 출연한 노동영(오른쪽) 서울대 유방외과 명예교수가 본지 의학전문기자 김철중(왼쪽)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노 교수는 국내 유방암 치료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오!건강

국내 여성암(癌) 발병률 1위는 ‘유방암’이다. 매년 새롭게 유방암 진단을 받는 환자가 3만여 명에 달한다. 30년 전만 해도 3000여 명에 불과했다. 유방암은 대표적인 선진국형 질병이다. 고(高)칼로리 식단에 음주와 흡연이 잦은 서구에서 흔했던 암이었지만, 한국도 서구화되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면서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국내 유방암 치료 최고 권위자이자 유방암 치료의 세계 표준을 재정립했다고 평가받는 노동영 서울대 유방외과 명예교수(현 강남차병원 병원장)는 “저출산 문제 역시 유방암 환자를 늘리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며 “출산과 수유가 유방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20일 조선일보 고품격 유튜브 의학 토크쇼 ‘명의의 전당’에 세 번째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노 교수는 국내 유방암 환자가 많지 않던 1980년대부터 유방암 치료에 뛰어든 1세대 전문의다. 의대를 막 졸업하고 의료 현장에 뛰어든 초보 의사 시절부터 ‘우리나라가 선진화되면 선진국형 병이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유방암 전문의로 진로를 정했다. 그의 예측은 적중했고, 2000년대 들어선 유방외과가 따로 생길 정도로 유방암 환자가 늘었다.

노 교수의 삶과 업적은 국내 유방암 치료의 역사이다. 예전에는 유방암이 있으면 림프절 전이에 대한 우려로 겨드랑이 림프절을 죄다 긁어내는 수술을 했다. 암이 아직 세포 내에서 자라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 ‘0기 암(상피내암)’이어도 가슴의 상당 부분을 도려내는 수술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수술은 유방을 잃을 뿐 아니라 팔이 붓는 림프부종이라는 부작용 때문에 환자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노 교수는 암세포가 전이되지 않은 부분까지 모두 절제하는 수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학술지를 보고 따라 한 수술에는 한계가 있어서 이탈리아 밀라노까지 건너가 유방보존술의 창시자 움베르토 베로네시 교수에게 직접 ‘감시림프절 생검술’을 배워왔다”고 말했다.

감시림프절 생검술은 젖꼭지 부근에 추적이 가능한 염색약이나 동위원소를 주사해 암이 있는 부위를 알아내는 방식이다. 이 방식 덕분에 무분별한 전절제술을 피하고 몸을 더 많이 보존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이 치료법을 단순 전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안전성을 입증한 논문을 세계 유명 학술지에 발표하며 유방암 수술의 새로운 표준을 정립했다. 노 교수는 “감시림프절 생검술을 받은 환자와 겨드랑이 전절제술을 받은 환자 800명의 생존율을 비교한 결과 암 전이나 생존율에 별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진경

노 교수의 업적은 수술실에만 있지 않다. 그는 유방암을 조기 진단하는 생체 표지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는데 정확도가 77%에 달해 영상으로 구분이 안 되는 유방암을 피검사를 통해 판별할 수 있게 했다. 2000년에는 유방암 인식과 조기 발견의 중요성을 알리는 ‘핑크리본’ 캠페인을 이끌고 전국 단위 유방암 환자 모임 ‘비너스회’를 조직하는 등 국내 유방암 인식 개선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2011년 ‘한국의 노벨의학상’이라 불리는 분쉬의학상을 받았다. 외과 의사 중 분쉬의학상을 받은 사람은 노 교수가 처음이었다.

노 교수는 “유방암 치료는 암만이 아니라 여성 환자의 삶도 치유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50대 초반에 유방암 환자들이 가장 많아요. 한 가정의 엄마로서 한창 가족을 위해 헌신할 때 유방암에 걸립니다. 고등학교 3학년 아이를 둔 어떤 암 환자는 아이 수능 시험이 끝날 때까지 수술을 미뤄 달라고 하기도 해요. 또 어떤 환자는 유방암 덕분에 가족들이 챙겨주고 쉴 수도 있어 좋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유방암은 의학과 사회학이 만나는 교차로였다. 그는 지금도 유방암 환자 모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회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글을 단다. 그가 단 답글만 5만 건이 넘는다.